피아니스트 손열음 ‘일본의 베토벤’ 사무라고치와 손잡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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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국제음악제가 열리는 강원 평창군에서 26일만난 피아니스트 손음. 일본에서 ‘현대판 베토벤’으로 불리는 작곡가 사무라고치 마모루의 피아노 소나타 음반 녹음을 마치고 전날 귀국했다. 대관령국제음악제 제공
대관령국제음악제가 열리는 강원 평창군에서 26일만난 피아니스트 손음. 일본에서 ‘현대판 베토벤’으로 불리는 작곡가 사무라고치 마모루의 피아노 소나타 음반 녹음을 마치고 전날 귀국했다. 대관령국제음악제 제공
피아니스트 손열음(27)이 그 사람을 만난 것은 4월 일본 요코하마(橫濱)에서였다. 그는 손열음의 연주 DVD를 보면서 한 손을 커다란 스피커에 얹었다. 귀 대신 손으로, 선율 대신 진동을 통해 음악을 듣는 그는 작곡가 사무라고치 마모루(佐村河內守·50)였다. 후천적으로 청각을 잃은 ‘현대의 베토벤’과 손열음의 첫 만남이었다.

사무라고치는 일본의 스타 작곡가다. 일본 컬럼비아레코드에서 2010년 발매한 교향곡 1번 ‘히로시마’가 인터넷에서 입소문을 탄 뒤 올해 3월 NHK 다큐멘터리 ‘영혼의 선율-소리를 잃은 작곡가’에 나왔다. 80분짜리 대작 교향곡 히로시마 음반은 18만 장이 넘게 팔렸다.

그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를 입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피아노 교사인 어머니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 고교 졸업 후 음대 작곡과에 진학하지 않고 육체 노동자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했다. 조성(調性)을 거부하는 현대음악 작법이 싫어서였다. 실직으로 집세를 내지 못해 노숙자로 지내기도 하고, 도로 청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기도 했지만 작곡은 멈추지 않았다. 어려운 생활 가운데 1990년대 말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오니무샤’의 음악으로 주목을 받았다.

사무라고치는 17세 때 원인을 알 수 없는 청각장애가 생겨났고 35세에 청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때까지 썼던 교향곡 12곡을 모두 폐기하고 귀가 들리지 않는 작곡가로서의 삶을 새로 시작했다. 그는 보일러실에 갇힌 듯한 굉음 속에서 절대음감에 의지해 작곡을 한다. 2000년부터 장애 어린이를 위한 시설에서 자원 봉사로 피아노를 가르쳤다. 이 시설의 한 여자아이에게 영감을 얻어 2003년 교향곡 1번을 썼다.

손열음은 그를 두고 “피아노가 고향 같은 작곡가”라고 했다. 당초 피아노 협주곡을 쓰려고 했던 사무라고치는 자신의 작품을 연주할 피아니스트를 찾고 있었다. 손열음은 일본 매니지먼트 회사를 통해 “작곡가를 한 번 만나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작곡가의 요코하마 집에서 그의 피아노 소나타 1번을 들었다.

청각장애 작곡가 사무라고치 마모루(왼쪽)가 손열음이 연주하는 피아노에 왼손을 대고 음을 느끼고 있다. 손열음은 “피아노를 작곡가와 함께 골랐는데 진동만으로 사운드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해낸다”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손열음 일본 투어 홈페이지
청각장애 작곡가 사무라고치 마모루(왼쪽)가 손열음이 연주하는 피아노에 왼손을 대고 음을 느끼고 있다. 손열음은 “피아노를 작곡가와 함께 골랐는데 진동만으로 사운드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해낸다”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손열음 일본 투어 홈페이지
손열음이 영어로 말하면 일본 매니저가 일본어로 통역했고 일본어 수화통역사가 수화로 작곡가에게 전달했다. 손열음이 피아노를 치면 그는 피아노 건반 옆 부분에 손을 대고 음악을 듣는다. 얘기가 잘 통하고 뜻이 맞았던 두 사람은 함께 작업하기로 했다.

사무라고치는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를 위해 쓴 10분 길이의 ‘레퀴엠’을 40분짜리 피아노 소나타로 새로 썼다. 진혼곡은 작곡가가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미야기(宮城) 현 이시노마키(石卷) 시에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소년을 위해 작곡한 것이다.

사무라고치는 이 피아노 소나타 2번을 손열음에게 헌정했다. 손열음은 최근 일본 도야마(富山) 현의 1000석 규모 시민회관에서 사무라고치의 피아노 소나타 1번과 2번을 녹음했다. 이 음반은 10월 일본 컬럼비아레코드를 통해 나올 예정이다.

녹음을 마치자마자 대관령국제음악제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한 손열음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이 작품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곧바로 들 정도로 좋았어요. 인간의 모든 감정이 들어있어 내면의 에너지가 엄청나게 필요한 곡이에요. 작곡가가 저의 열정을 좋아한 것 같아요.”

손열음은 새 음반 수록곡으로 9월 16일 요코하마 미나토 미라이홀에서의 첫 리사이틀 이후 일본 투어가 줄줄이 잡혀 있다. 10월 13일 도쿄(東京) 오페라시티 콘서트홀, 10월 26일 아이치(愛知) 현 예술극장 콘서트홀, 내년 4월 오사카(大板) 이즈미홀…. 일본 투어 홈페이지에 따르면 일본 전역에서 50여 회 연주회가 예정돼 있다.

하반기에는 중국에도 진출한다. 손열음은 올해 초 중국 매니지먼트 회사와 계약을 맺었다. 상하이(上海)와 베이징(北京)에서 독주회를 열고, 광저우(廣州) 심포니, 독일 NDR 오케스트라와 협연도 한다.

손열음은 8월 3일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피아니스트 김다솔과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축약판)을 듀오로 연주한다. 이후에는 한동안 국내 무대에서 그를 보기 어렵게 됐다.

평창=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손열음#사무라고치 마모루#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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