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겪어보지 못했다는 점에선 20대나 50대나 똑같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7일 03시 00분


인기웹툰 ‘죽음에 관하여’ 연재하는 20대 작가 시니와 혀노

웹툰 ‘죽음에 관하여’의 작가 혀노(왼쪽)와 시니. 20대 대학생인 둘은 “1시간 전에 피 말리는 원고 마감을 끝내고 왔지만 지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들이 느끼는 삶에 대한 무한한 감사는 죽음에 대한 고민 덕분이라고 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웹툰 ‘죽음에 관하여’의 작가 혀노(왼쪽)와 시니. 20대 대학생인 둘은 “1시간 전에 피 말리는 원고 마감을 끝내고 왔지만 지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들이 느끼는 삶에 대한 무한한 감사는 죽음에 대한 고민 덕분이라고 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기회는 없어. 넌 죽어버렸다.” 빈티지 청바지 차림에 헝클어진 곱슬머리, 턱수염을 기른 신(神)이 말한다.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말이 없다. 신은 다시 쏘아붙인다. “삶은 단 한 번뿐이야. 무슨 반전을 기대해?”

인터넷 포털에 연재 중인 웹툰 ‘죽음에 관하여’의 한 장면이다. 신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들을 만난다. 낙태 수술로 배 속에서 생을 마치는 태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는 노부인, 과로로 졸도한 회사원….

웹툰 ‘죽음에 관하여’. 신의 도움으로 5분을 얻은 남편은 아내에게 “좋은 남편은 아니었던 것 같아 미안하다”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한다.
웹툰 ‘죽음에 관하여’. 신의 도움으로 5분을 얻은 남편은 아내에게 “좋은 남편은 아니었던 것 같아 미안하다”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한다.
이 작품은 신이 그들을 만나 스스로 삶을 정리하게 하고, 벌을 주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린다. 에피소드별로 마치 ‘내 죽음을 그린 것 같다’는 댓글이 이어진다. 팬 카페 회원은 5000명을 넘어섰고 지난달에는 책으로 출간됐다.

죽음이라는 무시무시하고 무거운 화두를 다루는 두 작가는 뜻밖에도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작가 시니(본명 김신희·23)와 혀노(정현호·22)를 만났다. 시니가 줄거리를 구상해 콘티를 짜면 혀노는 그림을 그린다.

시니는 2010년부터 소방서에서 군복무를 하며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119 구급차를 타며 죽음을 많이 봤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할수록 현실에 충실해야겠다는 다짐이 더 단단해지는 것 같아요.”

오토바이를 타다 트럭과 부딪쳐 콘크리트 바닥에 쓰러진 여고생의 모습은 처참했다. “피는 생각보다 엄청나게 새빨갛고 끈적끈적하게 보였어요. 영화 속 죽음처럼 슬프거나 격정적일 줄 알았는데…. 징그럽고 당황스러웠죠.”

하지만 20대가 죽음에 대해 어줍지 않은 ‘개똥철학’을 늘어놓는 것 아니냐는 독자의 의견도 있다. 고개를 끄덕이던 시니는 “작업하면서 고민하고 많이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혀노는 “20대나 50대나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점은 똑같다”며 “젊기 때문에 죽음을 금기시하지 않고 어두운 면을 노골적으로 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자못 진지해진 둘에게 공동 작업의 계기를 물었다.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창작과 09학번 동기인데 시니는 진지한 혀노를 ‘복학생’으로, 혀노는 말끔한 시니를 ‘양아치’로 오해했다. 스토리 구상을 끝낸 시니가 먼저 혀노를 찾아냈다. “혀노의 손 그림이 맘에 들어 무작정 졸랐죠.”

각각 경기 용인시와 부천시에서 사는 두 사람은 메신저로 수시로 대화한다. 사소한 일로 의견차를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시니가 큰 방향을 그리면 혀노가 속을 채워 넣는 식의 ‘작업 궁합’ 점수로 후하게 99점을 줬다.

창창한 나이에 왜 하필 죽음이 주제일까? 혀노가 뿔테 안경을 지그시 올리며 말했다. “누구나 겪는 이야기잖아요. 하루에 30만 명 정도가 죽고 그만큼 태어난대요.” 주인공 신을 패션에 관심 많은 젊은 총각 혹은 옆집 대학생 같은 모습으로 그린 이유도 죽음을 낯설지 않게 표현하기 위해서다. 시니가 덧붙였다. “죽음은 멀지 않고, 삶의 곁에 있는 것 같아요.”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
#웹툰#죽음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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