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30>이불 속에서 웃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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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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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대문호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글을 읽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1236년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 재상으로 있을 때 이 시를 지었습니다. 첫 번째 서설에 해당하는 작품에서 ‘인간사 우스운 일 자주 일어나지만, 낮에는 정이 많아 웃을 겨를 없다가, 한밤에 이불 속에서 몰래 혼자 웃노니, 박장대소(拍掌大笑)도 이보다 못하리라(人間可笑事頻生 晝日情多笑未遑 半夜衾中潛自笑 殷於手拍口兼張)’고 하였습니다. 칠십 평생 세상을 살다 보니 별의별 우스운 일을 다 겪었을 겁니다. 재상이라 대놓고 비웃기도 무엇하니, 한밤에 이불 덮어 쓰고 혼자 웃는다고 하였습니다.

우스운 일 중에 첫 번째는 글재주 없는 사람이 권력자 앞에서 붓을 잡고 날렵한 척하여 벼슬을 노리는 일이요, 두 번째는 탐관오리가 천하가 다 아는 부정축재를 혼자 숨기려 드는 일이라 하였습니다. 아무개 관리 집에 뇌물상자가 건네진 것을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데, 정작 본인은 남들이 모를 것이라 생각하고 뻔뻔스럽게 청빈함을 자랑하니 그럴 만도 합니다. 세 번째로 우스운 일은 못생긴 여인이 거울 보고서도 알지 못하고 남이 칭찬해주면 정말 고운 줄 착각하고 교태를 부리는 일을 들었습니다. 네 번째는 이규보 자신이 요행으로 별 탈 없이 한세상 살면서 높은 자리에 오른 일이라 겸손을 부려보았습니다. 다섯 번째는 승려가 미인을 만나면 마음이 동하면서도 무심한 척 위선을 떠는 일이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다섯 편의 시를 보고 함께 웃을 수 있다면 잘 산 인생이겠지요.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시#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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