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31>신혼부부의 겨울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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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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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 이안중(李安中)이라는 흥미로운 작가가 있었습니다. 낭만적인 사랑의 노래를 즐겨 지었던 분입니다. 월령체(月令體)의 연작시 ‘월절변곡’을 지어 1월부터 12월까지 신혼부부의 사랑을 담아 놓았습니다. 압운(押韻)이니 평측(平仄)이니 하는 한시의 까다로운 형식을 갖추지 않았기에 변체의 노래라 하였습니다.

그중 12월에 해당하는 노래가 ‘월절변곡’입니다. 사랑스러운 부부가 불을 끄고 자리에 들어 밤새 꼭 껴안고 얼굴을 부비면서 잠을 잤습니다. 향긋한 숨소리라는 말에서 신혼의 정이 짐작됩니다. 아침에 일어난 아내는 제 화장이 어찌 다 신랑 얼굴에 묻었냐고 내숭을 떱니다. 신랑이 이 말을 듣고 한 번 더 안아주었겠지요.

11월을 노래한 시는 또 이렇습니다. “오늘 추위 몹시도 심하여라, 원앙 이불이 얇아 쌀쌀하기에, 밤새 낭군과 껴안고 자다가, 고개 돌려 낭군에게 말하네, ‘옆집에 사는 아낙네, 혼자 자면 얼마나 추울까?’(今日寒政苦 鴛衾薄不暖 竟夜交郞抱 回首向郞道 不知東家婦 獨宿寒何許)” 한겨울 추운 날씨에 비록 이불이 얇지만 함께 껴안고 있으니 훈훈합니다. 슬쩍 옆집의 홀로 된 아낙을 위해 근심하는 척 농을 건넵니다. 이안중은 이런 시를 즐겨 지었습니다.

‘자야가(子夜歌)’라는 연작시 중에서 “낭군이 하는 말, ‘술잔의 술, 맑은 향에 술맛이 다르구려.’ 웃음 머금고 낭군에게 이른 말, ‘제가 마시다 남긴 술이랍니다.’(郞言尊中酒 淸香酒味殊 含笑向郞道 酒是농飮餘)”라 하였습니다. 정다운 부부가 침상에서 나누는 도란도란 사랑의 대화가 옆에서 들릴 듯합니다.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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