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공감 Harmony]모든 것이 잠들어가는 11월, 정원은 가을로부터 시작된다

  • 동아일보

오경아 오가든스 대표 기고

화단의 땅이 쇠약해졌다면 가볍게 뒤집어 퇴비를 듬뿍 넣어주는 게 좋다. 그 위에 10cm 이상으로 나무껍질이나 퇴비로 멀칭을 해 주면 겨울 동안 흙이 보온돼 봄에 식물을 잘 길러낼 수 있게 된다. 임종기 씨 제공
화단의 땅이 쇠약해졌다면 가볍게 뒤집어 퇴비를 듬뿍 넣어주는 게 좋다. 그 위에 10cm 이상으로 나무껍질이나 퇴비로 멀칭을 해 주면 겨울 동안 흙이 보온돼 봄에 식물을 잘 길러낼 수 있게 된다. 임종기 씨 제공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걸쳐 울긋불긋 단풍이 절정에 오른 뒤, 정원은 너무나 순식간에 색을 잃어간다. 아니, 성급하게 잎을 떨어뜨린 식물들은 아예 뼈대만 남겨놓은 형상이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정원이라고 해도 11월에는 반갑게 손님을 맞을 입장이 못 된다.

모든 색과 형태가 사라져가는 11월의 정원! 그런데 나는 이 11월의 정원을 참 좋아한다.

나는 정원 디자인이란 영역을 좀 더 알고 싶어 영국에서 1년 동안 인턴 정원사의 삶을 살았다. 9월에 시작한 정원 일이 두 달 정도 지나 11월로 접어들 즈음, 어느 날 출근길에 문득 의문이 생겼다. ‘대체 낙엽까지 다 져버린 정원에서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내나?’ 그런데 막상 출근해 보니 영국 정원사들은 다른 때보다 좀 더 일찍 출근을 해 있었다. 그들은 따끈한 홍차에다 여자 정원사 한 명이 갓 구워 왔다는 플랩잭(곡물과 시럽을 버무려 만든 먹을거리)을 나누는 중이었다.

영국 정원사들은 달콤한 플랩잭을 내게도 권하며 “이제 해가 일찍 떨어지니 아침에 조금 더 서둘러야 해”라고 말했다. 그때 나이가 제일 많았던 헤드 가드너(Head Gardner)가 내게 해 준 말이 지금도 가을이면 떠오르곤 한다. “일반인들은 계절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말하지만 정원사의 계절은 가을, 겨울, 봄, 그리고 여름이지. 가을로부터 정원이 시작되니까.”

그의 말이 옳다는 걸 난 금방 알아차렸다. 방문객을 거부한 채 문을 닫아버린 11월의 쓸쓸한 정원에서, 나와 동료 정원사들은 가끔씩 울어대는 새소리를 친구 삼아 하루 종일 말도 없이 바쁘게 손을 놀려 정원 일을 했다.

그때 내가 경험한 11월은 모든 것이 잠들어가는 시기가 아니었다. 다음 해 봄을 꿈꾸고 계획하는 시간이었다. 바람은 점점 차가워지고 매서워졌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몸이 후끈해져 땀이 났다. 내 몸이 만들어내는 온기 속에서, 나는 자꾸만 아름다운 그 정원의 이듬해 봄이 떠올라 몸이 근질거렸다.

○ 화단 정리하기

여름 동안 길게 자란 덩굴장미 줄기는 3분의 1 정도 잘라주자. 겨울철 거친 바람에 가지가 꺾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전지 후 가지를 울타리나 지지대에 끈으로 묶어주는 것이 좋다. 임종기 씨 제공
여름 동안 길게 자란 덩굴장미 줄기는 3분의 1 정도 잘라주자. 겨울철 거친 바람에 가지가 꺾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전지 후 가지를 울타리나 지지대에 끈으로 묶어주는 것이 좋다. 임종기 씨 제공
11월은 화단을 정리하기에 아주 좋은 시기다. 이미 죽은 1년생 식물들은 뽑아버리고, 다음 해에도 싹이 올라오는 다년생 식물은 뿌리만 남기고 잎을 제거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화단 전체가 깨끗해진다.

아무것도 없는 화단에는 지난 1년간 식물들에 영양분을 빼주느라 힘들었을 흙도 보인다. 흙을 살짝 갈아엎은 뒤 새로운 거름을 보강해 주자. 이 일은 땅이 얼기 전 마쳐야 하니 서두르자. 만약 내년에 올해와는 다른, 새로운 화단을 만들고 싶다면 필요한 식물을 구해 심어두어도 된다.

○ 큰 나무 이동시키기

앞서 이야기했듯이 가을은 낙엽수, 특히 큰 나무를 옮기는 적기다. 물론 땅이 얼기 전에 이식을 마쳐야 하며, 품종이나 지역에 따라 나무를 옮겨 심는 시기가 다르니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는 게 좋다. 가을에 낙엽이 진 후에는 나무가 증산작용과 광합성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식물은 온전히 뿌리는 내리는 일에만 힘을 쓸 수 있고, 이렇게 정착된 뿌리는 봄이 왔을 때 물과 양분을 힘차게 빨아들인다.

단, 상록침엽수는 가을과 겨울에도 여전히 광합성 작용을 하기 때문에 초봄에 옮겨 심는 게 좋다. 이런 나무를 날씨가 추울 때 이동시키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다.

○ 생울타리 만들기

공기를 통과시키지 않는, 벽돌이나 판자로 된 정원 벽을 넘어선 겨울바람은 담장 아래서 뭉쳐 소용돌이친다(Wind Turbulence). 이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나무를 빽빽이 심어 울타리 혹은 벽을 만드는 게 좋다. 생울타리는 바람을 가늘게 통과시켜 추운 공기가 뭉치는 현상을 없애준다.

11월은 생울타리를 만들기에 적합한 시기다. 회양목으로 상록의 울타리를 만들어도 되고, 낙엽수인 너도밤나무나 서어나무도 이용이 가능하다. 어린 나무를 30∼60cm 간격으로 한 줄 혹은 두 줄로 심어 원하는 높이로 키우면 된다.

○ 장미 전지하기


봄부터 여름까지 장미는 줄기를 길게 뻗는다. 그런데 길어진 줄기를 잡아주지 않으면 자칫 겨울바람에 꺾이고 만다. 특히 덩굴장미는 줄기를 벽이나 지지대에 단단히 묶어줘야 겨울바람에 상하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장미 가지를 잘라주는 시기는 봄(4∼5월)이지만, 겨울이 오기 전에도 길게 자란 가지를 3분의 1 정도 잘라 키를 낮춰주는 일이 필요하다.

장미를 전지할 때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가지를 꼼꼼히 살펴 죽거나 병든 부분을 과감하게 잘라주는 것이다. 병들거나 죽은 가지는 병균이 자리를 잡기에 알맞은 곳이다. 그대로 두면 다른 건강한 가지까지 손상을 줄 수 있다.

○ 베란다 정원의 화분 물 주기


야생화 등 다년초 화분을 베란다에 두었다면 늦가을과 겨울철 물 주기를 잊지 말자. 일반적으로 겨울에는 물을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추위보다는 흙의 건조 때문에 겨울을 넘기지 못하는 식물이 의외로 많다. 영하의 기온이 아니라면 화분 속 식물들을 위해 2주에 한번 정도는 물을 주자.

○ 베란다 화분에 구근식물 심기

튤립 같은 구근식물의 알뿌리를 지금 화분에 심어두면 봄에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다. 단, 알뿌리는 깊은 어둠을 좋아하므로 검은색 천이나 비닐로 최소 12주 정도는 덮어주는 게 좋다. 알뿌리에는 물과 영양분이 저장돼 있기 때문에 싹이 틀 때까지 특별히 물을 주지 않아도 된다.

오경아 오가든스 대표: 방송 작가로 일하다 2005년 영국으로 떠나 에섹스대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같은 대학 조경학 박사 과정을 밟으며 한국에서 정원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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