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슈]황룡 심장에 ‘미래木’을 꽂다

  • Array
  • 입력 2012년 10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황사 발원지, 중국 7번째 규모 쿠부치 사막 가보니…
동서 길이만 262km, 지금도 사막화 진행 중

[1] 쿠부치 사막에서 나무를 심는 대한항공 직원들. [2] 2007년 심은 신장백양나무가 꽤 자랐다. (아래 사진) 5년 전 대한항공이 심은 나무들이 열을 이뤘다. 광대한 사막을 막고 선 결사대 같다.
[1] 쿠부치 사막에서 나무를 심는 대한항공 직원들. [2] 2007년 심은 신장백양나무가 꽤 자랐다. (아래 사진) 5년 전 대한항공이 심은 나무들이 열을 이뤘다. 광대한 사막을 막고 선 결사대 같다.
전날 비가 내렸다. 연강수량 300mm 안팎인 지역에서 드물게 내린 가을비다. 말라 있던 내에 물이 흐르면서 버스가 지나가자 작은 물보라가 인다. 냇물이 흐르는 양쪽은 초지다. 드문드문 나무가 서 있고 풀을 뜯는 양떼가 한가롭다. 그러나 풀이 듬성듬성 난 언덕을 돌아나가자 사구(砂丘·모래언덕)가 거대한 방죽처럼 막아선다. 사구 너머로는 끝닿을 데 모르게 뻗어 있는 건조한 땅. 16일 오전 9시, “낙타를 타지 않고 들어가면 불귀의 객이 돼 돌아온다”는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쿠부치(庫佈齊) 사막에 들어섰다. 손에 주어진 것은 삽과 고무양동이 그리고 신장백양나무 묘목이다.

○ 모래바람

바람이 분다. 다행히 공기가 습기를 머금은 덕분인지 모래는 그렇게 많이 날리지 않는다. 쿠부치 사막의 모래폭풍은 ‘황룡(Yellow Dragon)’이라고 불릴 정도로 매섭다. 황룡을 동반한 강풍이 부는 날이 연간 60일가량 된다고 한다. 2002년 4월 발생한 황룡은 쿠부치 사막 동쪽의 어얼둬쓰(鄂爾多斯) 시 다라터치(達拉特旗)까지 덮쳐 방목한 양 2000여 마리가 죽고 도로 수km가 두꺼운 모래로 덮였다. 용처럼 하늘로 솟아오른 모래는 편서풍을 타고 서울까지 영향을 미쳤다. 쿠부치 사막은 우리나라까지 날아오는 황사의 주요 발원지이기도 하다.

동서의 길이 262km, 면적은 약 1만6100km²로 중국에서 7번째로 큰 사막인 쿠부치. 서쪽 북쪽 동쪽 3면으로 황허(黃河)가 흐른다. 이곳은 2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양들이 풀을 뜯고 유목민이 사는 초원이었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따라 긴 가뭄이 지속된 데다 인구 및 가축이 증가하면서 방목이 과다해지고, 사람들이 초원을 무분별하게 경작지로 바꿔 온 것까지 맞물리면서 사막으로 변했다. 사막이 점점 더 영토를 넓혀가는 사막화는 21세기에도 현재진행형이다.

대한항공 직원 50여 명과 네이멍구 사범대 학생 50여 명 그리고 현지 주민들이 이날 심은 묘목은 약 1000그루. 대한항공이 6년째 이 사막에 심은 나무는 약 100만 그루를 헤아리지만 사막의 광활함에 비하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그래도 나무를 심을 수밖에 없다. 사막화를 막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폭넓게 퍼진 나무의 뿌리가 모래나 흙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꽉 잡아줘야만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모래의 양을 최소화할 수 있다. 초본(草本), 즉 풀과의 식물을 심는 방법도 있지만 나무 심기를 따라갈 수는 없다고 한다. 바로 모래바람 때문이다. 엄태원 상지대 교수(산림과학과)는 “초본은 뿌리 길이가 20∼30cm에 불과해서 모래바람이 걷어낼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2∼3년을 못 버티고 말 그대로 뿌리째 뽑힌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도 벌채를 최소화하기 위해 나무젓가락에까지 환경세를 물리고 헬리콥터에서 풀씨를 사막에 뿌리는 등 사막화 저지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역시 나무 심기가 최우선이라고 인식하는 듯하다. 쿠부치 사막 남쪽의 마오우쑤(毛烏素) 사막에서 20년 넘게 정부 지원 없이 나무를 심어 서울 여의도 넓이(8.4km²)의 10배가 넘는 숲을 이룬 부부에게 ‘치사영웅(治沙英雄)’ ‘노동모범’의 칭호를 내리고 각종 혜택을 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 생존의 법칙


사막에서 나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물 없이 오래 버틸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나무는 대략 5∼9종인데, 특히 백양나무(사시나무라고도 함) 같은 포플러 계통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포플러 계통은 뿌리를 내릴 때까지만 물을 주면 이후에는 알아서 생장을 한다. 포플러 묘목이 뿌리를 내리는 데는 2∼3년이 걸린다. 나뭇가지 끝부분에서 새로운 가지가 나왔다면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렸다고 판단할 수 있다.

포플러 묘목이 뿌리를 내리는 확률(활착률)은 우리나라에선 90∼95% 정도다. 그러나 사막에서 이런 수준을 유지하기는 매우 어렵다. 중국인들이 개량한 일명 사막버드나무의 활착률도 30% 안팎이라는 보도가 있을 정도다. 따라서 어떻게 심었느냐와 함께 어떻게 관리를 하느냐가 활착률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하다. 뿌리를 내리기까지 모래바람의 영향을 덜 받기 위해 묘목 주위에 짚이나 나뭇가지 등을 이용해 울타리를 만들어 바둑판 모양으로 깔아놓기도 한다.

다행히 쿠부치 사막은 지표면에서 50∼70m만 파 내려가면 수맥을 찾을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에 지하수를 공급할 여력은 있는 셈이다. 이날도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삽으로 70cm∼1m 가까이 파 들어가자 습기를 머금은 모래가 나왔다. 사전에 알려준 나무 심을 때의 유의사항에는 이런 습기 있는 모래로 묘목 구덩이를 메우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수분을 충분히 공급해주기 위함일 터이다.

사막화 방지를 위해 퇴경환림(退耕還林·경작지를 물리고 숲을 되돌린다) 정책을 펴오고 있는 중국은 사막에 심는 나무에 수분을 효율적으로 공급해주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중국의 녹색환경 추진단체인 엘리온자원집단이 사막버드나무의 생존율을 90%까지 높일 수 있는 획기적인 물 공급 기술을 개발했다는 뉴스가 CNC(중국 관영 신화통신의 24시간 뉴스 전문 케이블방송)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기도 했다.

대한항공이 이날 심은 신장백양나무가 사막화를 방지하고 황사를 줄일 수 있으려면 최소한 10년은 기다려야 한다. 나무의 키가 15m는 돼야 방풍림 노릇을 할 수 있고, 뿌리도 약 10m 깊이까지 내려가야 주위의 모래를 움켜쥐는 효과가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도 동네 주변에 빡빡 깎은 머리 모양 같다고 해서 ‘빠박산’이라고 부르는 민둥산이 적지 않았다. 정부가 이른바 산림녹화 사업을 펼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리고 그 혜택을 30년이 넘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다. 결국 나무를 심는 것은 적어도 30년 앞을 바라보는 투자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단편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에서 폐허가 된 산 곳곳에 떡갈나무와 너도밤나무 씨를 뿌리고 가꿔서 숲을 이룬 주역은 양치기 노인 엘제아르 부피에, 단 한 사람이었다. 그 한 사람의 힘으로 메말랐던 계곡에 물이 흐르고 떠났던 사람들이 되돌아 왔다. 쿠부치 사막에 심은 나무 한 그루는 어쩌면 미래를 약속하는 이정표일 것이다.

바오터우=글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사진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황사#쿠부치 사막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