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니 잡으로 사람 온다니께 고래야, 언능 가부러야!”

  • 동아일보

◇그 고래, 번개/류은 글·박철민 그림/196쪽·1만1000원·샘터

열세 살 섬소년 상택이는 외로웠다. 하나뿐인 동갑내기 단짝 형철은 도시로 떠났다. 홀로 물장구를 치다보니 문득 서러워서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다가 새 친구와 마주쳤다. 꼬마향고래 ‘번개’였다. 고래와 소년은 여름 내내 바닷가에서 함께 살다시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 말씨를 쓰는 낯선 아저씨가 느닷없이 섬을 찾아왔다. 고래가 바닷가에 머무는 것이 이상해서 조사를 해야 한다면서, 어민들이 고래가 양식장을 망친다고 하소연했다고도 했다. 아저씨는 번개에 대해 캐고 다니더니 급기야 번개를 박제해 박물관에 전시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상택이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아저씨가 금세라도 번개를 잡아 박제로 만들어버릴 것 같았다. 바닷가로 달려가 번개에게 소리쳤다. “번개야, 내 말 잘 들어야 헌다. 니는 인자 여그 있으문 안 돼야. 바다로 돌아가서 니 가족을 찾아야 혀. 니 잡으로 사람이 온다니께. 언능 가라이! 언능 가부러야!”

번개는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상택이는 번개를 멀리멀리 보내기 위해 곧장 바다로 뛰어들어 수평선을 향해 헤엄쳤다. 번개는 경기라도 하는 것처럼 따라왔다. 섬이 점만큼 작게 보이는 곳이 이르자 소년은 기운을 잃고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번개를 살리려다 죽었으니 틀림없이 좋은 곳으로 가겠지….’

소년이 눈을 뜨고 보니 펑펑 우는 엄마 품에 안겨 있었다. 번개가 소년을 뭍에 내려놓고 바다로 돌아간 것이었다. 또래보다 키가 작아 늘 주눅 들어있던 상택이는 기운을 냈다. ‘형철이도 가고. 번개도 가고. 이젠 내가 갈 차례다.’

남도 사투리를 쓰는 소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대화체, 감칠맛 나는 표현으로 번개를 지키려는 소년의 감정선이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제1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표제작과 함께 작가의 신작 세 편도 함께 실었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가 겪는 갈등을 담은 ‘베트남+한국’, 치매 노인을 다룬 ‘마귀할멈 이야기’, 분노와 용서를 그린 ‘꼬마 산신령, 호랑이 눈썹, 달봉이’도 탄탄한 작품이다. 어린이 독자에게 교훈을 전달하겠다는 강박이 느껴지지 않아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책의 향기#어린이 책. 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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