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89>일명경인(一鳴驚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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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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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한 일 鳴: 울 명
驚: 놀랄 경 人: 사람 인

평상시에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사람을 놀라게 할 만한 업적을 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일비충천(一飛沖天·한 번 날면 하늘 높이 난다)과 함께 쓰인다.

“이 새는 날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 번 날았다 하면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울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 번 울었다 하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此鳥不飛則已 一飛沖天 不鳴則已 一鳴驚人).”

사기 ‘골계열전(滑稽列傳)’에 나오는 이 말은 익살과 해학의 달인 순우곤(淳于곤)이 제나라의 위왕(威王)과 나눈 대화의 일부다. 위왕은 수수께끼를 좋아하고 음탕하게 놀며 밤새도록 술 마시기를 즐겼다. 그래서 문무백관들은 문란해졌고 제후들이 동시에 침략해 나라의 존망이 아침저녁으로 절박한 지경에 놓였다. 그런데도 주위 신하들 가운데 감히 간언하는 자가 없었다.

그래서 순우곤이 수수께끼를 좋아하는 왕에게 “나라 안에 큰 새가 있는데, 대궐 뜰에 멈추어 있으면서 3년이 지나도록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있습니다. 왕께서는 이것이 어떤 새인지 아십니까”라고 묻자, 왕이 위와 같이 대답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은연중에 과시한 것이다. 순우곤이 이렇게 위왕을 치켜세워 위왕은 비로소 군대를 정돈하고 민심을 추슬러 잃었던 영토를 되찾고 무려 36년 동안 맹위를 떨쳤다.

위왕과 관련된 이야기는 또 있다. 위왕 8년에 초나라가 쳐들어오자, 왕은 순우곤에게 황금 100근, 사두마차 10대를 예물로 가지고 조나라로 가서 구원병을 청하게 하니 순우곤은 겨우 이런 정도의 예물로는 어림없다고 했다. 그러자 위왕이 다시 황금 1000근, 백벽(白璧) 10쌍, 사두마차 100대로 예물을 늘려 구원병을 청하게 하자, 조나라는 정예병 10만 명과 전차 1000대를 내주었다. 성과에 만족한 위왕이 주연을 베풀어 자축했다. 시국에 어울리지 않는 위왕의 행태에 못마땅했던 순우곤은 “술이 극도에 이르면 어지럽고 즐거움이 극도에 이르면 슬퍼진다(酒極則亂 樂極則悲)”는 말로 그를 일깨워 주었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한자#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일명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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