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 없이… 안마기로… 전위 대중음악의 ‘진화’

  • 동아일보

LIG아트홀 솔로 공연
백현진 ‘송진의 속도’… 독특한 목소리만으로 느리게
조 웅 ‘안마의 구성’… 안마기 소리 배경 ‘뽕끼’ 선보여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조웅(왼쪽)과 어어부 프로젝트의 백현진. 콘서트에 쓸 안마기를 앞세워 베이스 기타를 잡은 조웅은 “어쨌든 이번 공연은 얄궂은 작업이 될 것 같다”고, 마이크를 든 백현진은 “악보는 없고, 가사는 있고, 선율은 내 몸 안에 있다”고 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조웅(왼쪽)과 어어부 프로젝트의 백현진. 콘서트에 쓸 안마기를 앞세워 베이스 기타를 잡은 조웅은 “어쨌든 이번 공연은 얄궂은 작업이 될 것 같다”고, 마이크를 든 백현진은 “악보는 없고, 가사는 있고, 선율은 내 몸 안에 있다”고 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대중음악계 전위 작가들’로 불려온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의 보컬이자 화가인 백현진(40)과 밴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구남·舊男)의 리더 조웅(33)이 만났다. ‘구남…’은 ‘옛날 남자와 여자가 스텔라 자동차를 타고 간다’는 뜻. 20일 오후 서울 역삼동 LIG아트홀 내 연습실에서 만난 둘의 말투는 송진이 흐르는 속도처럼 느렸다. 이들은 이곳 콘서트홀에서 ‘솔로 프로젝트’라는 연작 공연을 연다. 밴드 편성을 배제하고 보컬 혼자서 1시간여를 끌어가는 공연은 그 자체로 꽉 찬 음향과 편곡이 대세인 요즘 대중음악의 한계를 희롱하는 전위적 실험이다.

공연 제목도 특이하다. 24일과 25일 오후 8시 무대에 서는 조웅은 ‘안마의 구성’, 28일과 29일 오후 5시에 공연하는 백현진은 ‘송진의 속도’를 타이틀로 정했다.

조웅은 “혼자 모든 악기를 오가며 음악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기승전결을 갖춘 안마와 비슷한 구성이라고 봤다”고 했다.

백현진은 “악기 하나 없이 송진의 속도처럼 느린 호흡의 목소리만으로 60분의 공연을 채우겠다”고 했다. 그는 노래방 사이키조명부터 미러볼, 형광등까지 다양한 빛에 목소리만 더해 공연을 끌고 가겠다고 했다. 이런 식이다.

‘무대 가운데, 백열등이 켜져 있다. 고주파 벨소리를 내는 에너지 차임이라는 악기의 소리에 맞춰 백열등 불빛이 흔들린다. 내가 앉아 있다. 마이크를 들고 헤드폰을 쓴 채로. 무대 위엔 스튜디오 녹음 장비들이 즐비하다. 관객들은 내 녹음 작업을 엿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녹음 장비는 있되 악기는 단 한 가지도 없다. 1시간 동안 공연장을 채우는 것은 음률과 박자를 줄였다 늘였다 하는 나의 목소리뿐이다.’

친분이 있는 홍상수 감독은 백현진의 야무진 공연 개요를 듣고서 “그런 걸 누가 보냐”며 웃었다고. 백현진도 인정한다. “이번 공연만을 위해 8곡을 새로 만들었는데, 제목(‘송진의 속도’)만큼 느리고 굉장히 지루한 공연이 될 수도 있겠어요.”

그는 이번 공연을 위해 하루 서너 갑씩 피우던 담배도 끊었다. 이유는 “(긴) 호흡이 중요한 공연이 될 것 같아서”다. 기형도의 시 ‘빈집’, 가곡 ‘그 집 앞’ 등을 해체해 재조합한 ‘제 집 앞, 빈 집, 그 집 앞’이란 연작곡도 지어 부른다. ‘그대를 꿈꾸는 속도도 있고 그대를 멈추는 속도도 있다’는 ‘그 사람’이란 곡을 포함해 대부분의 곡에 ‘오늘밤’이라는 세 음절 단어가 들어간다는 점도 특징이다.

긴 머리를 히피처럼 질끈 동여맨 조웅이 이끄는 구남은 록과 포크, 전자음악을 섞어 한국적 감성으로 구성지게 풀어내는 밴드다. 그의 모던하면서도 ‘뽕끼’ 어린 보컬의 아우라가 독특한데, 그는 이번 공연 ‘안마의 구성’을 위해 30만 원대 국산 안마기를 직접 구입했다. ‘불이 꺼지면 빨간 가림막 뒤로 나의 그림자가 비친다. 내가 앉은 의자에서 안마기가 작동되고, 그 ‘드르륵, 드르르르르륵…’ 하는 소리의 리듬 위로 내가 드럼, 베이스, 건반을 차례로 오가며 소리의 층을 덧댄다. 노래가 시작된다.’

첫 곡 제목은 ‘주물러’. 그는 얼마 전 통기타를 들고 베트남의 한 섬으로 떠나 일주일간 머물며 처음 하는 솔로 공연에 필요한 7곡을 써왔다. 그는 “예민하고 꺼끌꺼끌한 공연을 해보고 싶었는데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곡들만 써졌다”고 했다.

백현진, 조웅 둘 다 말이 느리다. 서로 문답한다.

“공연 끝나면… 비싼 안마기는 어떻게 할 거야?”(백) “글쎄요. 커서 집에 놓을 데도 없고… 참…. 그냥 내가 써야죠.”(조) “(이런 공연 하려면) 그 정도는… 투자해야 되는 거 아니야?”(백) “형은… 뭐하는데?”(조) “난… 몸에 투자했지. 동해 바다에도 다녀오고. 추어탕도 먹고.”(백)

백현진이 덧붙였다. “공연의 길이는 가변적이다. 노래하다 화장실이 너무 급하면 나도 모르게 빨리 부를 수도 있으니까.”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대중음악#어어부 프로젝트#백현진#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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