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色을 입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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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8편의 풍경 - 추억… 화가 8명, 화폭에 담아
한가람미술관서 전시회

작가 한승원의 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그린 화가 박금화의 ‘바람에 꽃피는 언덕’. 꽃과 사람을 어우르면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사람임을 보여준다. 화가 박금화 씨 제공
작가 한승원의 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그린 화가 박금화의 ‘바람에 꽃피는 언덕’. 꽃과 사람을 어우르면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사람임을 보여준다. 화가 박금화 씨 제공
소설가 양귀자가 1986년 발표한 연작 소설 ‘원미동 사람들’에는 1980년대 달동네 풍경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급속한 도시화 속에서 집값 싼 곳을 찾아 사람들은 하늘과 맞닿은 동네에 다박다박 모여든다. 어지럽게 이어진 골목길은 미로처럼 복잡하다. 좀체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서민들의 굴곡진 삶 같다.

소설을 읽으면 자연스레 원미동의 실제 모습이 궁금해진다. 경기 부천시 원미동에 가서 궁금증을 해소할 수도 없다. 30년 가까이 지난 세월 탓이다. 하지만 그림이라면?

화가 이영선이 소설 ‘원미동 사람들’을 모티브로 ‘소중한 기억’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비롯해 작품 4점을 그렸다. 하얀 캔버스 위에는 시침이 빠진 시계와 까맣게 타버린 나무, 빛바랜 신문 쪼가리(재벌을 포함한 경제 기사들이다)가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원미동은 하얀 회벽처럼, 빛바랜 신문처럼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듯하다.

소설이 화폭 속으로 들어갔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다음 달 1일까지 열리는 ‘문학과 예술의 새로운 모색-저작걸이展’. ‘원미동 사람들’을 비롯해 김홍신의 ‘대발해’, 박범신의 ‘외등’, 한승원의 ‘아제아제 바라아제’, 임영태의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 전경린의 ‘첫사랑’, 홍명진의 ‘숨비소리’, 황정은의 ‘百의 그림자’ 등 소설 8편이 미술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이영선을 비롯해 공기평 김문석 김민주 김상열 김원용 박금화 최영진 등 화가 8명이 장르를 허무는 산고(産苦)를 통해 소설을 미술로 그려냈다.

박범신의 소설 ‘외등’에서 가냘픈 외등은 온갖 난관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표현한다. 주인공 서영우는 사랑하는 민혜주가 감금돼 있는 병원 창문 밖에서 손전등을 나무에 걸어놓고 쓸쓸히 죽어간다. 화가 김문석은 이를 모티브로 여러 개의 등이 땅에서 하늘로 솟아난 설치 작품 ‘외등’을 선보였다. 김문석의 외등도 소설처럼 사랑을 상징하지만 가냘프지도 쓸쓸하지도 않다.

사진작가 최영진은 소설가 김홍신의 ‘대발해’를 캔버스에 옮겼다. 울트라크롬 잉크 프린트로 작업한 ‘해 2012-1’에는 발해의 상징인 삼족오가 등장한다. 수많은 작은 새들이 점점이 모여 거대한 삼족오를 이룬 게 이채롭다. 작은 민초들의 힘이 모이면 이렇듯 웅대해지는 걸까. 15, 16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김홍신은 전시회 팸플릿에 ‘대발해’의 집필 배경을 적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분노하던 중 법륜 스님에게 “발해를 우리 민족사에 남기는 게 국회의원 열 번 하는 것보다 낫다”는 충고를 들었다는 내용이다. 2004년 의원 임기를 마치고 집필에 나선 김홍신은 2007년 ‘대발해’(전 10권)를 펴냈다.

박금화의 ‘바람에 꽃피는 언덕’은 한승원의 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그린 작품이다. 꽃과 사람이 어울리는 몽환적 세계를 그렸는데 ‘가장 아름다운 꽃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메시지는 한승원 소설의 주제의식과 통한다. 한승원은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소설로 쓴 화엄경’이라고 말했다. “화엄경은 꽃으로 우주를 장식하기를 가르치는 경전이다. 우리들의 삶은 한 송이 꽃이 되는 것이다.”

참여 작가이자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영선은 “문학과 미술이라는 다른 분야에서 독자적인 결과물을 만들던 창작 관행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입체적인 문화를 선보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소설#한가람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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