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현대 미술의 새 명소 日 오지의 섬 나오시마를 가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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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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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이우환 작품 찾아 건축-미술팬 年 30만명 방문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세계 최초의 지하 미술관인 ‘지중 미술관’. 지상에서는 마치 토치카를 보는 느낌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절묘한 자연 채광으로 특별한 감동을 준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세계 최초의 지하 미술관인 ‘지중 미술관’. 지상에서는 마치 토치카를 보는 느낌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절묘한 자연 채광으로 특별한 감동을 준다.
《 오염과 산업 폐기물로 버려지다시피 했던 일본의 작은 섬이 현대 건축과 미술의 세계적 명소가 됐다. 일본 중남부 시코쿠 가가와 현 해상국립공원의 나오시마(直島). 인구 3600여 명에 자전거를 타고 2시간이면 돌 수 있을 만큼 아담한 섬이다. 민박을 제외하곤 미술관을 겸하고 있는 호텔 1개(방 65개)가 숙박시설의 전부지만 현대 건축 미술 거장들의 ‘숨겨진 보물섬’을 순례하기 위해서 연간 3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찾아온다. 일본의 출판 교육 기업인 베네세그룹의 후쿠타케 소이치로 회장이 20여 년 전 ‘자연 건축 예술의 공존’을 테마로 이 독창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에게 의뢰해 미술관과 호텔을 겸비한 베네세 하우스(1992년), 세계 최초의 지하미술관인 지중(地中) 미술관(2004년), 세계 정상급 작가인 한국의 이우환만을 위한 미술관(2010년) 등을 차례로 섬에 들어 앉혔다.

건축가와 작가가 사전에 충분한 대화를 나눠 가급적 ‘1실 1점’ 정도의 작품을 두도록 했다. 자연채광을 최대한 살려 계절, 날씨, 시간에 따라 건축물 안팎과 전시작에서 각기 다른 미학과 영감이 느껴진다. 한마디로 ‘스토리텔링’이 있는 신비주의 문화 마케팅이다.

○ 이우환 미술관
‘모노하 운동’ 창시자에 바친 경배


세계 정상급 작가인 한국의 이우환에 대한 ‘경배’로 2010년 오직 그 한 사람만을 위해 나오시마에 건립된 미술관. 이우환과 오랜 교분을 갖고 있는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사전에 그의 예술론과 전시작품에 대해 충분한 대화를 나누며 설계를 진행했다. 왼쪽부터 ‘조응의 공간’, 영상과 자연의 관계성을 모색한 ‘그림자 방’, 선에서 점 등으로 변해 간 작가의 시대별 대표 평면 회화와 조각을 전시한 ‘만남의 방’.
세계 정상급 작가인 한국의 이우환에 대한 ‘경배’로 2010년 오직 그 한 사람만을 위해 나오시마에 건립된 미술관. 이우환과 오랜 교분을 갖고 있는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사전에 그의 예술론과 전시작품에 대해 충분한 대화를 나누며 설계를 진행했다. 왼쪽부터 ‘조응의 공간’, 영상과 자연의 관계성을 모색한 ‘그림자 방’, 선에서 점 등으로 변해 간 작가의 시대별 대표 평면 회화와 조각을 전시한 ‘만남의 방’.
이우환은 나무 돌 철판 등 가공하지 않은 소재를 있는 그대로 배치해 각각의 고유성과 관계성을 보여주는 세계적 예술사조인 모노하(物派) 운동의 창시자다. 지난해 백남준에 이어 한국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다.

이우환이 설치한 오벨리스크와 자연석, 철판이 놓여있는 3만3000m²(약 1만 평)의 야외 공간을 지나자 안도 특유의 기법인 노출콘크리트로 지은 미술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곧바로 하늘을 직접 끌어들인 듯한 ‘조응의 공간’이 나타난다. 삼각형으로 이루어진 공간에 철판과 자연석이 묵묵히 마주보고 있다.

사선의 벽을 따라 실내로 들어가자 ‘만남의 방’으로 이어진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선에서 점 등으로 변해 간 작가의 시대별 대표 평면 회화 7점과 조각 한 점이 전시돼 있다. 이 안에 전시된 작품값만 100억 원은 넘을 것 같았다. 이어 자연석과 철판이 대화를 나누는 느낌을 주는 ‘대화의 방’과 영상을 가미한 그의 최초 작품이라는 ‘그림자 방’이 나온다. ‘관계성’에 대한 모색이다.

마지막은 ‘명상의 방’. 실내화로 갈아 신어야 바닥이 마루로 돼 있는 전시실에 들어갈 수 있다. 입장 인원도 10명 안팎으로 제한한다. 관람객들은 이우환의 점이 각 면에 하나씩 그려져 있는 이 전시실에서 수행자나 순례자가 된 듯 10∼15분씩 작품을 응시하거나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다. 미술관 개관 이후 외국인 중 한국인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찾아온다.

○ 지중 미술관
자연 채광으로 채운 지하 미술관


위쪽부터 클로드 모네의 ‘수련’5점이 걸린 ‘모네의 방’, 제임스 터렐의 ‘오픈 스카이’, 월터 드 마리아의 ‘타임, 타임리스, 노타임’
위쪽부터 클로드 모네의 ‘수련’5점이 걸린 ‘모네의 방’, 제임스 터렐의 ‘오픈 스카이’, 월터 드 마리아의 ‘타임, 타임리스, 노타임’
클로드 모네, 월터 드 마리아, 제임스 터렐 등 유명 작가 3명의 작품 9점만을 위한 세계 최초의 지하 미술관. 매표소에서 전시장으로 가는 길에 모네가 수련을 그린 장소인 프랑스 지베르니 연못을 재현해 놓았다. 마치 토치카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지만 자연채광으로 전시관 내부는 바깥처럼 밝다.

첫 번째 전시실은 모네의 수련 그림 5점이 걸려 있는 ‘모네의 방’. 실내화로 갈아 신어야 한다.

5점의 그림은 후쿠타케 회장이 경매를 통해 구입한 작품들이다. 이탈리아 카라라산 백색 대리석을 가로 세로 높이 2cm씩 75만 개로 가공해 전시실 바닥을 장식한 것은 이 작품에 대한 최고의 ‘경배’나 다름없다.

다음은 월터 드 마리아의 ‘타임, 타임리스, 노타임’ 전시실. 역시 자연채광이다. 신전의 계단 같은 곳에 14t이나 되는, 지름 2.2m로 가공된 둥근 인도산 화강암이 놓여있고 27개의 황금 오브제가 벽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천장은 작가와 건축가가 사전에 협의해 작품을 전시실에 들여놓고 나서야 마감했다.

이어 제임스 터렐의 시대별 빛 연작 3점을 세 개의 전시실에 나눠 전시했다. 빛의 실체와 인간의 착각을 작품으로 보여준다, 세 번째 전시실 ‘오픈 스카이’는 관람객이 대리석 벤치에 앉아 천장의 대형 유리창을 통해 하늘을 보게 함으로써 인간과 빛 자연의 일체감을 느끼게 했다. 달과 별을 마주할 수 있는말의 야간투어와 천장 유리창을 때리는 빗소리도 특별한 감동을 준다고 한다.

○ 베네세 하우스
세계적 작가 작품 전시된 호텔 겸 미술관


구사마 야요이의 노랑 ‘펌프킨’
구사마 야요이의 노랑 ‘펌프킨’
미술관에 10개, 산 정상 오벌(Oval)에 6개, 해변에 8개, 공원에 41개 등 4개동에 65개의 숙소가 있다. 미술관 안팎뿐 아니라 각 동과 해변을 따라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 56점이 전시돼 있다.

작가들이 직접 미술관을 방문해 전시 위치와 작품을 구상하게 했다. 리처드 롱, 브루스 나우먼, 데이비드 호크니, 앤디 워홀, 야스다 겐 등의 작품과 만날 수 있다. 선착장과 해변에 있는 구사마 야요이의 빨강과 노랑 ‘펌프킨’도 인기다.

그동안 4번이나 나오시마를 찾은 미술애호가 조양 씨는 “올 때마다 새로운 구경거리가 있어 신선한 감동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한형석 씨는 “단순성이 돋보이는 안도의 건축 기법, 그리고 건축가와 작가의 충분한 대화로 ‘왜 그 작품이 거기에 있어야 하는가’를 알게 해 주는 점 등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주부 정양옥 씨는 “이 섬은 관람객이 단지 작품 앞을 지나치는 곳이 아니라 건축과 작품을 직접 육감으로 체험하는 미술관”이라고 평가했다.

나오시마=오명철 문화전문기자 oscar@donga.com  
사진 출처=베네세 아트사이트 나오시마, 이우환 미술관, 지중 미술관  
#현대 미술#나오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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