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강영걸 씨(왼쪽)와 극작가 이만희 동국대 교수가 만나면 늘 작품 이야기로 얘깃거리가 풍부하다. 1992년 초연한 히트작 ‘불 좀 꺼주세요’에 대해 강 씨가 “당시 입장하는 관객의 줄이 공연장인 대학로 극장부터 마로니에공원까지 이어졌다”고 하자 이 교수는 “절반 이상이 지방 관객이었다”고 거들었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1990년대 연극계를 주름잡았던 명콤비 강영걸 연출가(69)와 이만희 작가(58·동국대 교수)가 이 교수의 대표작 4편을 2년에 걸쳐 연속으로 무대에 올린다.
두 사람의 성을 써 ‘이·강 연극시리즈’로 명명한 이 프로젝트의 첫 작품은 1992년 대학로극장에서 초연 당시 장장 3년 6개월 동안 1157회 공연, 관객 20만 명을 동원한 ‘불 좀 꺼주세요’다. 강 씨가 17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리는 ‘불 좀…’은 초연 장소인 대학로극장에서 7월 12일부터 9월 9일까지 63회 공연하고 노원문화예술회관, 안동예술의전당 공연 계획도 잡혀 있다. 이후 ‘돌아서서 떠나라’(10월부터 고양 아람누리 새라새 극장 등), ‘피고지고, 피고지고’(내년 3월부터 서울 삼일로창고극장),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내년 8월·장소 미정)로 이어진다.
6일 인터뷰 약속 장소인 서울 대학로 레스토랑 ‘장’을 찾았을 때 강 씨와 이 교수는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작품 연출에 대한 이야기로 한창이었다.
“처음 네 작품을 올린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전 반대했어요. 공연하는 네 작품 중 강 선생님이 연출한 적 없는 ‘돌아서서 떠나라‘를 포함해 만만한 작품이 없거든요. 저와 선생님 모두 한창 왕성하던 시기에 수공예품처럼 정성스럽게 만들었지요. 건강도 안 좋은 분이 옛날 생각하고 ‘오버’하시다 더 나빠질까봐 걱정입니다.”
이 교수의 말에 강 씨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식도암으로 투병 중인 강 씨는 이번 프로젝트로 신이 난 모습이었다. “‘불 좀 꺼주세요’는 초연할 때 놓쳤던 부분을 보완할 겁니다. 암전 없이 오버랩으로 장면이 40번 넘게 바뀌는 공연이라 빠른 템포를 선호하는 요즘 관객들에게도 정신없을 거예요.(웃음) ‘피고지고…’는 할 때마다 새로운 게 보이는 작품이고, ‘돌아서서…’는 이만희 작가 최고의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2년 전에 하려다 못했는데 이번에 하게 됐네요. ‘그것은 목탁…’은 원래 대극장에 맞는데 소극장에서만 해서 속상했죠. 이번에는 큰 무대에 올릴 예정이라 무대 메커니즘을 많이 활용해 볼 생각입니다.”
두 사람은 1990년 ‘그것은 목탁…’으로 처음 만났다. 이 작품은 그해 삼성문예상, 백상예술대상, 서울연극제 희곡상 등을 휩쓸었다. 이후 손대는 작품마다 예술과 흥행, 두 마리의 토끼 사냥에 성공했다.
“연극 잘 모를 때 강 선생님과 작업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연출 구상이 잘 안될 때는 펜치로 자기 이빨도 뽑는 분이에요. 몇 년 전 식도암 수술 전날 문병 갔더니 밤인데 희곡을 잡고 계신 거예요. 글이 눈에 들어오느냐고 했더니 ‘그래도 이게 있어 위안이 된다’고 하셔서 혀를 내둘렀죠.”
강 씨는 이 교수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우연히 ‘그것은 목탁…’ 희곡을 받아 읽는데 ‘이것 봐라, 한국 작가의 글이 맞나’ 하고 놀라면서 읽고 또 읽고 한 게 밤을 새우면서 일곱 번하고도 반을 읽었어요. 이상적인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참 현실적으로 하거든. 새로운 형식의 리얼리즘이었죠. 인물을 통해 삶을 얘기한다는 점에서 저의 연극관과 잘 맞아요.”
강 씨는 ‘돌아서서…’를 포함하면 이 교수의 전체 작품 중 절반가량인 7개 작품의 연출을 맡게 된다. “힘닿는 데까지 당신 작품을 무대에 올리겠다고 약속했어요. 이 작가의 희곡은 행간을 읽어야 하는데 제대로 읽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
두 사람은 작업하면서 의견충돌 한번 없었다고 했다. 강 씨는 “한 번은 국립극단하고 ‘피고지고…’ 공연할 때인데 공연 시간이 세 시간이 넘었어요. 일주일 공연해 보고 각자 대본을 고쳐 비교해 보자고 했는데 수정한 부분의 85% 이상이 같았다”고 예를 들었다.
이 교수는 “선생님과 작업하면서 한 번도 스타일에 대해 얘기해 본 적이 없다. 항상 초점은 사람 냄새였다. 이번 공연에서도 이 시대에 맞는 사람 냄새가 난다면 그것으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010-2610-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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