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국립발레단 제작의 창작 현대 무용 ‘포이즈’를 함께 준비하는 안무가 안성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오른쪽)와 국립발레단 간판 무용수 김주원 씨. 안 교수가 김 씨에 대해 “팔을 들었을 때 얼굴과 팔의 공간이 아름답다”고 말하자 김 씨는 “안 선생님은 매우 지적인 안무가”라고 화답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안 선생님 작품을 하게 되면 연습이 끝날 때마다 매번 ‘아,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자괴감이 들어요.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작품을 끝내고 나면 한 단계 발전했다는 느낌을 받죠.”(김주원)
“좋은 작품이 나오려면 안무가와 무용수 사이에 확 통하는 ‘마술’이 일어나야 하는데, 김주원이란 무용수와는 그런 마술이 잘 일어납니다.”(안성수)
현대무용 안무가와 발레리나로 각각 한국을 대표하는 안성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50)와 김주원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34)가 세 번째 마술에 도전한다. 6월 29일부터 7월 1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는 창작 무용 ‘포이즈(Poise·평형 또는 균형)’이다. 국립발레단 창단 50주년을 맞아 계획한 야심작으로, 안 교수의 안무에 김 씨가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쇼스타코비치와 바흐의 음악을 활용해 세상 만물을 ‘균형’의 시각으로 재조명하는 작품이다.
두 사람이 작품을 함께 하기는 2000년 안 교수가 안무를 맡은 현대무용 ‘초현(超現)’ 이후 12년 만이다. 첫 작품은 1998년 국립발레단의 창작 발레 ‘바리’였다. 포이즈는 세 번째 작품인 셈이다. 최태지 국립발레단 단장이 안무한 ‘바리’에서 안 교수는 조안무를, 김 씨는 주인공 ‘바리공주’를 맡았다.
“당시 전 미국에서 활동하다 막 돌아왔을 때였고, 주원이도 러시아 볼쇼이 발레학교를 졸업하고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주인공을 맡은 무용수가 너무 어려 놀랐고, 또 너무 잘해서 놀랐죠.”(안성수)
미국 줄리아드음악원 무용원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현대무용가로 활동했던 안 교수는 고전 설화를 다룬 이 작품에 현대적인 색깔을 입히는 역할을 맡았다. 김 씨는 “그때까지 클래식 발레만 해오다 현대무용은 처음 접했다. 내가 한 번도 말해보지 않은 외국어를 배우는 듯 신기하고 재미있었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2년 뒤 안 교수가 안무를 맡은 ‘초현’으로 이어졌다. 탱고음악에 맞춰 가로세로 3m의 좁은 공간에서 국립발레단의 간판인 김주원 김지영 두 무용수가 20분간 현대적인 춤사위를 펼치는 작품이었다. 안 교수는 처음부터 두 사람을 염두에 두고 구상한 작품이라고 했다.
두 사람에겐 남다른 인연이 하나 더 숨어 있다. 2005년 무용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 김 씨는 여성무용수 부문, 안 교수는 안무 부문 후보로 나란히 이름을 올렸던 것. 김 씨는 1999년 강수진(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무용수)에 이어 한국인으로 두 번째 수상자가 됐고, 안 교수는 한국인 최초 안무 부문 후보에 오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안 교수는 김 씨에 대해 “음악성, 신체조건, 테크닉을 다 갖췄다는 점에서 신이 내린 무용수이다. 보통 작품을 할 때 무용수와 음악적인 부분을 맞추는 작업부터 시작하는데 주원 씨는 그런 단계가 필요 없다”고 칭찬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함께 무대에 서는 김지영은 어떤가’라는 우문에 “똑같이 훌륭한 무용수이지만 백조와 흑조처럼 색깔이 다르다”는 현답이 돌아왔다.
그는 김주원 씨의 춤에서 작품에 대한 영감도 얻는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김 씨가 나오는 공연을 열심히 보고 있다는 안 교수는 김 씨의 지젤 연기에서 이번 작품 한 대목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무용수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장면이다.
김 씨는 “연습이 진행될수록 당초 예정보다 출연하는 장면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며 입을 삐죽였다. 보통 클래식 발레가 1분에 10개의 동작이 있다면 포이즈는 1분에 60개의 동작이 들어가 몸을 계속 움직여야 하는데 출연 시간이 점점 늘어 힘들다는 것. 안 교수는 두 주역 무용수의 기량이 월등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오랫동안 봐왔지만 주원 씨는 체력, 표현력, 테크닉에서 요즘이 최고 전성기”라고 치켜세웠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