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누드 발끝에 화려하게 피어난 럭셔리 구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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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루부탱, 크레이지호스 쇼와 환상적 만남

구두와 누드의 만남. 구두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루부탱(가운데)은 파리의 카바레쇼. ‘크레이지 호스’의 댄서들을 통해 여성의 아름다움을 예찬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제공
구두와 누드의 만남. 구두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루부탱(가운데)은 파리의 카바레쇼. ‘크레이지 호스’의 댄서들을 통해 여성의 아름다움을 예찬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제공
불이 꺼졌다. 누군가가 큰기침을 했다. 샴페인 잔을 기울이며 연인 또는 친구들과 유쾌하게 떠들던 관객들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꼴깍. 다른 누군가가 침을 삼켰고, 막이 열렸다.

조명이 여성 모델의 다리와 하이힐을 비추었다. 모델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빨간 구두창(레드 솔)이 살짝살짝 내비쳤다. 굽 높이가 10cm는 족히 될 듯한 하이힐이었다. 모델이 단지 걷기만 하는데도 극장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드디어 무대 전체에 불이 켜지고, 짧은 금발 가발을 쓴 반나체의 댄서들이 등장했다. 댄서들은 하반신 일부는 손바닥만 한 삼각형 천으로 가렸지만 상반신은 완전히 노출한 아슬아슬한 차림이었다. 댄서 10여 명은 똑같이 맞춘 하이힐을 신은 채 복제 인형처럼 움직였다.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하이힐과 누드의 만남. 결론부터 말하자면 쇼는 섹시했지만 전혀 천박하지 않았다.

6일 오후 8시 프랑스 파리의 크레이지호스 쇼장에서 열린 럭셔리 구두 브랜드 크리스티앙 루부탱과 예술성 높은 누드 쇼 크레이지호스의 만남은 그래서 ‘고품격 예술 쇼’라 불릴 만했다.

구두 디자이너 루부탱은 크레이지호스 쇼 최초의 객원 크리에이터로 이번 작업에 참여했다. 1951년 첫선을 보인 크레이지호스 쇼는 디타 본 티즈, 패멀라 앤더슨 등의 섹시 스타들이 게스트로 공연에 참여할 정도로 유명한 무대다. 짙은 화장 탓이기도 했지만, 할리우드 스타 뺨칠 만큼 예쁘고 훤칠한 댄서들만 봐도 그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빠르게 도는 소파에서 조금씩 옷을 벗으며 리드미컬하게 움직인다든지 봉에 매달려 다리 하나로 몸무게를 지탱하는 고난도 동작을 할 때마다 슬쩍 드러나는 ‘말 근육’은 미소 속에 감춰진 노력의 흔적을 짐작하게 했다.

구두와 누드의 만남. 여성을 소재로 했고 인간의 본능과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소재다. 프랑스어로 ‘불(Feu)’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공연에서 디자이너 루부탱은 구두뿐 아니라 무대 디자인 및 안무에까지 참여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여성의 형상에 대한 찬미는 언제나 내 관심사였다. 나는 구두 디자이너라 특히 여성의 하반신에 관심을 집중해왔다. 다리는 어떤 인간의 감정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다. 다리로 ‘불꽃’과 같은 열정을 표현할 수 있다.”

데이비드 린치, 스위즈 비츠 등 유명 아티스트들이 음악에 참여한 이 공연은 사운드 면에서도 우수했다. 공연이 끝난 뒤 밖으로 빠져나온 각국 기자들과 일반 관객 일부는 공연 중 댄서들이 부른 노래들을 계속 흥얼거릴 정도였다.

예술적 재능이 충만한 루부탱이 이 공연을 기획해 얻을 수 있는 수확은 확실히 적지 않을 듯했다. 일단 온몸을 다 바친 정열적인 댄스에도 그가 만든 ‘킬 힐’이 온전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루부탱표’ 구두의 ‘존재감’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아리따운 여성 10여 명이 탈의한 채 춤추는 이 압도적인 장면에도 많은 관객의 시선이 ‘몸’이 아닌 구두에 꽂혔기 때문이다. 하이힐과 여체가 만난 ‘불’ 공연은 크레이지호스 쇼장에서 5월 31일까지 계속된다.

파리=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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