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있는 도시락 전문점 ‘본도시락’에서 점심시간을 앞둔 직장인들이 도시락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본도시락 제공
9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테이크아웃 도시락 전문점 ‘본도시락’. 본격적인 점심시간이 시작되려면 30분이나 남았지만 약 10명의 직장인이 벌써 모여 추위에 발을 구르고 있었다. 매장 앞에 줄을 선 회사원 최복순 씨는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얼른 도시락을 구입해 먹은 뒤 공부를 하거나 운동을 한다”고 전했다.
이곳의 매장 직원은 현장 주문을 처리하면서 전화 주문까지 받느라 양손이 부족해 보일 정도였다. 10m²(약 3평) 규모의 이 매장에서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1시 반까지 팔리는 도시락은 배달까지 포함해 약 250개다.
길 하나 건너편에는 외식전문점 ‘불고기브라더스’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가장 저렴한 메뉴로 1만2900원짜리 도시락을 판다. 이 매장 관계자는 “한화나 미래에셋 등 인근 대기업 직원들의 단체 도시락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대형 오피스상권인 이곳 종각역 주변에선 ‘벤또랑’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등이 선보이는 도시락 메뉴 역시 만들기가 무섭게 팔려나가고 있었다.
점심시간을 경쟁력을 기르는 데 활용하려는 ‘2030세대’ 직장인 수요가 늘면서 편의점과 외식업계의 도시락 시장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빠르게, 그러나 건강하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하려는 수요가 몰리면서 관련 업계는 프리미엄 도시락 개발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 점심시간은 자기계발 시간
‘오늘은 어떤 도시락 드시겠어요^^.’
한 화장품 업체 마케팅팀 팀원들의 데스크톱 화면에는 매일 11시 45분마다 인턴사원이 보내는 인터넷 메시지가 떠오른다. 인턴이 픽업해 온 도시락을 받아든 직원들은 조용히 각자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영어회화 강의를 듣거나, 식사를 서둘러 마친 뒤 몰입 근무를 한다. 일부는 인근 헬스장을 찾는다. 이 회사 조윤희 과장(35)은 “집이 멀어 아침이나 저녁에 따로 영어학원을 다니기 힘들다 보니 이런 식으로 점심시간을 활용한다”며 “어떤 때는 고 3때 독서실 풍경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의 도시락 수요에 편의점 세븐일레븐의 지난해 도시락 매출은 2010년 대비 123.1% 늘었다. 훼미리마트와 GS25 역시 각각 56.7%, 91.8%의 신장세를 보였다. 싸고 간편하게 구입할 수 있는 편의점의 도시락 메뉴는 흔히 1인 가구 증가, 불황에 맞춘 알뜰 소비 트렌드와 맞물려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도시락 메뉴의 주 고객층과 시간대, 잘 팔리는 메뉴 등의 소비 행태를 면밀히 살펴보면 돈을 아끼기 위해서라기보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도시락을 찾는 직장인 수요가 도시락 시장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프리미엄 도시락이 뜬다
‘빅3’ 편의점 업체 가운데 지난해 도시락 매출 성장세가 가장 컸던 세븐일레븐은 지난해 7월 업계 최초로 국과 도시락을 합친 프리미엄 메뉴를 선보인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자체 분석하고 있다. 이 업체의 지난해 상권별 도시락 매출 증가율 조사 결과 오피스가는 185.2%로 학원가(144.1%), 병원 지하철(97.1%), 주택가(91.1%)를 훨씬 웃돌았다.
2009년 8월 종각역 인근에 테스트 매장 1호점을 연 본도시락 역시 고급 도시락에 대한 수요를 깨닫고 고급화를 추진해 매출이 10배로 늘었다. 오픈 초기엔 편의점과 크게 다를 바 없는 4000원대 메뉴를 선보이다가 지난해 7월 매장 인테리어를 리뉴얼하고 고가 메뉴 군을 접목한 결과, 하루 매출이 30만 원대에서 300만 원대로 껑충 뛴 것. 현재 이 매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도시락은 6000원대 소불고기 도시락과 1만 원대 VIP 도시락이다.
본도시락을 운영하는 본아이에프의 이진영 홍보마케팅팀장은 “도시락은 흔히 알뜰형 소비자들이 즐겨 찾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며 “앞으로 프리미엄 도시락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판단해 이달부터 가맹사업도 시작했다”고 전했다.
2008년 도시락 메뉴를 처음 선보인 불고기브라더스의 지난해 도시락 매출은 전년 대비 40% 성장했다. CJ푸드빌이 선보이는 한식 브랜드 ‘비비고’에서도 특히 삼성 계열사들이 밀집한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강남삼성타운매장과 금융 및 외국계 기업이 많은 광화문점에서 테이크아웃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도시락 시장의 성장을 젊은 세대에 널리 퍼진 웰빙 트렌드와 맞물려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젊음이 곧 경쟁력’이라는 풍토와 맞물려 젊어서부터 건강관리에 신경 쓰는 2030세대가 늘어나다 보니 패스트푸드 대신 한식 도시락을 찾게 됐다는 것. 이상헌 창업경영연구소장은 “젊은층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시간을 쪼개 살면서도 건강도 챙기려 하다 보니 이들을 겨냥한 도시락 전문점 창업 건수가 크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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