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자 아빠와 아들이 8년을 관찰한 우리 곁의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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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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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예섭 군과 ‘사랑하면 보이는 나무’ 펴내

“아빠, 저 나무가 무슨 나무예요?”

2004년 봄 어느 주말.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아들 허예섭 군(17)이 아빠 허두영 씨(51·과학동아 편집인)에게 아파트 현관 앞에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물었다. “엄마한테 물어봐. 인터넷을 찾아보든가.” 무심하게 대답하던 아버지는 문득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색이 10년 넘게 과학기자로 지내면서 일반 대중에게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려 애써왔는데, 정작 아들과 함께 나무 이름 하나 공부할 시간이 없다니….’

다음 날부터 허 씨 부자는 집 주변에 무심하게 서 있는 나무들의 정체를 밝혀나가기 시작했다. 느티나무는 출퇴근길을 가로등처럼 지켜보고 있었고, 명자나무는 딸내미가 놀던 놀이터에 예쁘게 자리하고 있었다. 전설의 계수나무는 달이 아니라 화단에 우뚝 서 있고, 동화 속 개암나무는 뒷산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마가목은 하루에도 몇 번씩 봤지만 무슨 나무인지 전혀 모르다가 아들의 질문으로 비로소 그 존재를 알게 됐다. “닥터 지바고가 흰 눈이 쌓인 산 속에 갇혀 있을 때 마가목의 빨간 열매를 보며 연인 라라를 그리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이후 볼 때마다 얼마나 아름다운 나무인지 매번 감탄했죠.”

허 씨 부자는 8년간 나무를 관찰한 기록을 노트에 꼼꼼히 담았다. 아들은 나뭇잎을 그림으로 그리고 학명, 분류, 꽃말, 유래, 용도, 전설 등을 조사해 썼다. 아버지는 시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문학적 나무이야기를 곁들였다. 이 노트는 최근 ‘사랑하면 보이는 나무’(궁리)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됐다.

‘사랑하면…’은 자작나무부터 호랑가시나무까지 52종의 나무를 소개하고 있다. 1월 첫 주부터 12월 마지막 주까지 매주 한 그루씩 나무가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때에 맞춰 배열했다. 자작나무는 4월에 꽃을 피우지만 한겨울 눈 속에 서 있는 모습이 가장 멋지고, 오동나무는 6월에 꽃을 달지만 커다란 이파리를 떨어뜨리는 오동추(梧桐秋)의 늦가을에 관찰해야 오동동(梧桐動)의 호젓한 운치를 느낄 수 있다는 식이다.

책을 읽다보면 나무에 대한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토끼와 거북’에 등장하는 토끼는 왜 하필 떡갈나무 밑에서 낮잠을 잤을까? 제페토 할아버지는 왜 소나무로 피노키오를 만들었을까? 단군신화에서 환웅은 왜 신단수(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와 신시(神市)를 건설했을까?

허 씨는 “아들과 둘이서 낮이면 나무를 관찰하고, 밤이면 글을 쓰느라 끙끙대던 지난 8년 동안 아내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도 한가롭게(?) 책을 쓰고 있는 아들에 대한 불안과 초조를 애써 감추어줬고, 딸은 주말에도 같이 놀아주지 않는 아빠와 오빠에 대한 질투를 잘 참아줬다”고 회상했다.

허 씨는 이제 딸과 함께 ‘사랑하면 보이는 풀(꽃)’에 대해 공부하고 책을 쓰는 작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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