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눈-귀는 즐거웠는데 가슴은 왜 허전할까

  • 동아일보

◇ 창작무용 ‘4色여정’ ★★★

너무 고요했다. 거센 파도도, 세찬 비바람도, 배의 요동도 거의 없었다. 더러 멋진 풍광과 매혹적인 자연의 소리가 들리곤 했지만 항해를 통해 기대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새로움, 예기치 않은 짜릿함은 없었다.

4, 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한 ‘4色여정’은 국내 대표적 공공 공연장이 ‘클래식 한류’를 표방하고 스타급 무용수 4명을 내세워 만든 창작품이란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극장예술 작품으로는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차분했다. 흑백 톤 무대, 항해의 이미지를 연계한 블루와 화이트 조명의 대비, 부분적으로 임팩트를 준 영상이 만들어낸 회화적 이미지, 움직이는 지체의 조형적 아름다움이 시각적인 볼거리를 선사했다. 동서양, 현과 보컬이 만남 선율도 가슴을 파고들었다. 문제는 그런 예술적 교감이 지나치게 짧고, 간헐적이고, 하나의 흐름 속에 용해되지 못하고, 산만하고 밋밋하게 분산됐다는 것이다.

안무자에 의한 움직임 조합은 70분 동안 6개 장면의 각기 다른 정감을 표출하기에 부족했다. 군무진의 움직임은 유사한 스타일의 반복과 앙상블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황혜민과 엄재용의 파트너십은 뛰어났지만 갈라 공연이 아닌 만큼 발레 2인무의 정형화된 스타일을 한 걸음 더 탈피했어야 했다. 김주원의 솔로 춤은 외로움과 절절함으로 윤기가 흘렀지만 이정윤과 만나면서 그 빛이 오히려 바래버렸다. 가면이 등장하는 군무와 에필로그에서 4인무와 군무의 배합도 공간 활용과 움직임의 질 모두에서 빈약했다.

해금과 바이올린 등 현악기와 피아노가 더해진 라이브 연주는 어떤 장면에서는 선명하게 각인될 정도로 빼어났으나 마치 영화의 배경음악 같은 톤으로 일관되면서 결국 안무자의 다양한 움직임의 융합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등 제작진이 내세운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소재로 한 작품은 쉬운 선택 같지만 그 작업은 가장 어려울 수 있다. 관객들의 삶의 궤적이 다르고 감성적으로 그것과 만나는 방식 역시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안무자는 ‘항해-삶’이라는 콘셉트에 지나치게 함몰됐다. 그보다는 4명 스타급 무용수를 포함한 춤 그 자체에 더 많은 공을 들였어야 했다.

대관 위주에서 벗어나 공공성을 높이려는 예술의전당의 이번 작업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순수 예술의 한류는 전통적이고 한국적인 것만을 지향하고 고집해서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보편적인 양식의 공연을 따르더라도 예술적인 완성도가 높다면 상품으로서의 경쟁력도 생기고 한류는 자연스럽게 성공한다. 공연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작품의 질이다.

장광열 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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