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식품 호기심 천국]죽음을 부르는 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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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석청 속 毒… 자칫 목숨 앗아갈 수도

꿀은 ‘하늘에서 내려준 이슬’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몸에 좋고 귀한 식품이다.

꿀 가운데서도 석청(石淸·wild honey)은 특히 귀한 대접을 받는다. 석청은 야생벌이 깊은 산 속 절벽이나 바위틈 등에 모아둔 꿀을 말한다.

석청 중에도 특히 유명한 것이 네팔 등 히말라야 부근에서 나오는 꿀이다. 히말라야 고산족인 ‘파랑게(Honey Hunter)’들이 가파른 절벽을 타고 올라가 목숨을 걸고 채취하는 히말라야 석청은 천식이나 기침, 피부염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히말라야 석청의 국내 수입은 금지돼 있다. 그 이유는 뭘까.

필자는 1999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최초로 석청을 연구한 적이 있다. 당시 히말라야 석청을 먹고 탈이 난 환자 2명의 사건을 담당했다. 한 명은 석청 한 숟가락을 먹은 뒤 복통을 호소했지만 3일 뒤 건강을 회복했다. 하지만 다른 한 명은 소량의 석청을 먹고 쓰러진 뒤 앰뷸런스에 실려 가던 도중 사망했다. 필자는 당시 사고를 일으킨 석청에서 원인물질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정확한 원인은 찾지 못했다. 단지 동물실험을 통해 미상의 독극물이 함유돼 있음을 발견했을 뿐이다.

그러다 2007년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일부 석청에 함유된 그레이아노톡신이 인체에 치명적인 작용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레이아노톡신은 해발 3000m 이상 고산지대에 사는 철쭉 속에 다량 함유된 심장독성 물질. 사람이 먹었을 때 저혈압, 구토, 과도한 타액 분비, 무력감, 의식불명, 시야장애 등을 유발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사망까지 이르게 하는 무서운 물질이다.

그 얘기를 듣고 보관해 두었던 석청을 확인해 보니 그레이아노톡신이 다량 함유된 ‘독꿀’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2008년에도 두 건의 석청 사고가 접수됐는데 확인해 보니 마찬가지로 많은 양의 그레이아노톡신이 들어 있었다.

히말라야 부근에서 그레이아노톡신이 함유된 석청이 자주 발견되는 이유는 뭘까. 필자의 추측으론 독소에 면역력을 가진 벌들이 고산지대에 자생하는 철쭉에서 꿀을 채취한 뒤 저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문제의 석청을 연구해 본 결과 유동성은 많은 반면 수분함량이 적었다. 살짝 맛을 보니 입 안에 짜릿하고 강한 통증이 왔다. 일부 무허가 석청 판매자들은 이런 통증을 약화시키기 위해 상품 전단에 ‘소주를 몇 잔 먹은 뒤 석청을 섭취하라’는 문구를 넣기도 한다. 물론 이는 위험하고 잘못된 처방이다.

식약청에서 히말라야 석청의 위험성을 강조해 왔음에도 무허가 석청 유통은 여전히 문제다. 지난해에도 모 사찰의 승려가 2007년 네팔에서 들여온 석청 20kg을 몰래 팔다 적발됐다. 최근엔 인터넷을 통해 불법 석청이 유통되고 있다.

우리 주변엔 아직까지 히말라야 석청을 산삼에 버금가는 건강식품으로 여기며 맛을 보길 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렇게 호기심에 맛본 꿀 한 숟가락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

정진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약독물과 식품연구실장(이학박사) jji20000@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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