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안정효 씨 “떡값 2억 받으면, 떡 2억 원어치 먹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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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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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풍자 ‘역사소설 솔섬’ 내년 출간

소설가 안정효는 다음 달 서울 종로구 구기동 아파트로 이사한다. “더 조용한 곳에서 작품에 매진하고 싶다”는 게 30년 동안 정들었던 집을 떠나는 이유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소설가 안정효는 다음 달 서울 종로구 구기동 아파트로 이사한다. “더 조용한 곳에서 작품에 매진하고 싶다”는 게 30년 동안 정들었던 집을 떠나는 이유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선거 때면 철새 정치인들 얘기 많이 하잖아. 그런데 내 소설에서는 철새 정치인들이 하늘을 날아서 바다 건너 섬으로 가. 진짜 철새처럼 말이야. 아휴∼,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웃기네. 허허.”

소설가 안정효(70)가 껄껄 웃었다. 집필을 마친 장편 ‘역사소설 솔섬’을 설명하면서였다. ‘하얀 전쟁’ ‘은마는 오지 않는다’ 등 사실적이고도 묵직한 소설을 써왔던 작가는 작심하고 펼친 문학적 변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즐거운 듯했다. 15일 서울 은평구 갈현동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원고지 4000장 분량으로 책 서너 권은 너끈히 채울 만한 이번 소설의 장르는 이렇다. ‘판타지+역사+정치+풍자소설.’ 일흔에 쓴 ‘해괴한 작품’의 정체성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막소설이지, 막 쓰는 소설. 나는 그동안 너무 고지식하게 ‘하얀 전쟁’이니 이런 걸 써왔는데 돌아보니 내 속에는 이런 걸 쓰고 싶은 충동이 있었던 거야. 상상력에 제한을 안 두는 자유분방한 소설 말이야. 쓰면서도 즐거웠어.”

“좀 황당하긴 하지”라며 작가 스스로 설명한 스토리는 이렇다. 가상의 섬 ‘솔섬’이 점차 융기해 거대해지면서 이 땅의 이윤과 권력을 차지하려는 투기꾼과 조직폭력배, 정치인들이 몰려든다. 각종 권모술수와 사기, 이합집산이 펼쳐지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국사회를 풍자한다. 시간적 배경은 2007년에 시작해 1945년에 마치는 역순으로 잡았다.

가상의 공간과 인물을 내세웠지만 실제 인물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쿠데타를 하겠다”고 공언하고 다니던 군 장성이 솔섬으로 쫓겨난 뒤 섬의 권력을 찬탈하거나, 사이버 선거전 승리를 통해 대권을 쥐는 인물 등에서 쉽게 박정희,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릴 수 있다.

“이승만 시대, 군사정권 시대(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 진보 시대(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각 시대를 풍자했다. 특정 시대를 두둔하기보다는 잘못된 우리 정치와 정치인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풍자하려고 했다.”

작품 속에선 떡값 2억 원을 받은 정치인들에게 실제 떡 2억 원어치를 먹게 하고, 기업인들이 산으로 야유회를 가자 인근에 있던 정치인들이 단체로 마중 나가 후원 요청을 하며 매달린다. 최루탄을 팔아 거부가 된 기업인이 촛불집회 열풍이 불자 양초 장수로 변모하고, 조폭은 ‘정치인 수련학교’를 세워 격투기장으로 변모한 국회에서 싸울 파이터들을 키워낸다. 가장 가까운 시점을 2007년으로 못 박았지만 전국에 도랑을 쳐 가재를 잡는다는 설정에서 4대강 사업을 유추할 수 있는 등 최근 정치 행태도 담았다.

“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지나고 보면 그 행태는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아. 본격적인 정치 소설을 쓸 생각도 해봤지만 결국 정치 얘기는 풍자가 들어가야 재미있는 것 아니겠어. 정색하고 쓰는 건 신문에 매일 나잖아.”

정치 얘기는 내년 대선 얘기로 흘렀다. 1700억 원 상당의 보유 주식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얘기를 꺼내자 안정효는 말을 아꼈다. “몇 번 만났고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지. 글쎄, 아까운 사람 하나 또 망가지겠구나 싶어.”

안정효는 내년에 작품을 출간할 계획이다. 당초 출간을 의뢰했던 출판사는 정작 탈고가 되자 “부담스럽다”며 출간을 포기했다. 새 출간 계약은 아직 하지 않았다.

“그래도 정치 얘기인데 대선 앞두고는 나와야 하지 않겠어. 정 안 되면 나 죽고 나서 딸들이 내도 좋고, 허허.”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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