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창조하길 원하는가? 이미지로 생각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8일 03시 00분


◇ 글자로만 생각하는 사람 이미지로 창조하는 사람/토머스 웨스트 지음·김성훈 옮김/
560쪽·2만5000원·지식갤러리

엄청난 업적을 이룬 난독증 ‘환자’들에 대해 이 책은 이들의 성취가 난독증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난독증 ‘덕분에’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글 읽기와 계산하기에 서툴렀기 때문에 어진 과제를 시각적 ‘이미지’로 생각했고, 그 덕에 창조력의 한계도 뛰어넘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식갤러리 제공
엄청난 업적을 이룬 난독증 ‘환자’들에 대해 이 책은 이들의 성취가 난독증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난독증 ‘덕분에’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글 읽기와 계산하기에 서툴렀기 때문에 어진 과제를 시각적 ‘이미지’로 생각했고, 그 덕에 창조력의 한계도 뛰어넘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식갤러리 제공
책 제목을 보고 가슴이 뜨끔했다. 글자로 된 책을 달달 외웠던 학창시절부터 글자로 된 기사를 쓰는 지금까지 기자 역시 ‘글자로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시장에서 그림을 볼 때도 글자로 이뤄진 설명을 보며 이해하려 한다. 상당수 독자들도 비슷할 것이다. 우리의 교육체계는 글자 위주로 짜였고,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학습장애’라는 멍에를 뒤집어쓰기 십상이다.

하지만 난독증(지능에 문제가 없는데 글 읽기를 못하거나 대단히 어려워하는 증상)을 매개로 ‘시각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책은 글에 갇혀 사고하는 게 비효율적이라고 말한다. 우선 떠오른 아이디어를 언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생각의 속도가 떨어진다. 또 생각이나 감정 모두를 언어로 표현할 수 없기에 글에 얽매여서는 더 큰 창조로 발전하기 힘들다. 이미지로 생각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문제를 더 큰 그림으로 바라보면서 패턴을 찾아낼 수도 있고, 기존 관념의 한계를 넘어 제3의 아이디어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최근 세상을 떠난 ‘창조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도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일곱 살 때 난독증 판정을 받은 영화배우 톰 크루즈는 영화를 찍을 때 누가 옆에서 대본을 읽어줘야 했다.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동화작가 한스 안데르센도 일종의 난독증 또는 학습장애를 지녔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뤘다.

저자는 이들의 성취가 난독증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난독증 ‘덕분에’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글을 읽지 못하고 계산에도 서툴렀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시각적 ‘이미지’로 생각했고, 그 덕에 창조력의 한계도 뛰어넘을 수 있었다는 것. 글 읽기에 어려움을 겪은 시인 예이츠는 “문학적 상상을 하다 보면 기하학적 이미지가 떠오른다”고 했고, 톰 크루즈는 “어느 순간부터 대본을 머릿속에서 시각화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했다.

난독증을 앓는 사람들이 어떻게 시각화해 생각하는지를 책은 다각도로 살펴본다. 글자에 갇혀 사는 우리가 어떻게 시각적 창조력을 키워야 할지도 알려준다. 유명인들의 난독증 사례도 풍성하게 소개했다. 다빈치가 발음은 맞지만 철자가 틀린 단어를 자주 사용했고(‘rain’을 써야 할 때 ‘rane’을 쓰는 식), 웅변의 대가인 처칠이 자신의 말이 중간에 끊기기라도 하면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는 등의 일화도 흥미롭다.

술술 읽히지 않는 점은 흠이다. 인문교양서라기보단 뇌 과학 전문서에 가까워 내용이 쉽지 않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도 아니다. 포괄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산만한 편이다.

변명이라도 하듯 저자는 “문자를 이해하고 문자로 잘 표현하는 능력이 미래 사회에는 큰 가치를 가지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능력이 필요한 작업 대부분을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 말이 맞다면 문자의 집합체인 책도 굳이 논리정연한 체제를 고수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을까.
▼ 이미지는 죽음의 두려움을 베는 칼 ▼
◇ 이미지의 삶과 죽음/레지스 드브레 지음·정진국 옮김/
576쪽·2만5000원·글항아리


“바지를 입혀라.”

교황 하드리아누스 6세는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누드를 보면서 불경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르네상스 시대 건축가인 레오네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샘이나 강, 폭포 그림을 보는 건 열병 환자에게 큰 효험이 있다. 잠들지 못할 때 머릿속에 샘물을 그려 보면 졸음이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한 황제도 궁궐의 그려진 벽화를 지워버리라고 명했다. 벽화 속 물소리가 잠을 설치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이미지는 인류의 정신사에 단순히 ‘보이는 것’ 이상의 힘을 발휘해 왔다.

이 책은 글자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지금까지 인류 공동체에서 이미지가 어떤 위상과 영향력을 가져왔는지 파헤친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문인인 저자는 “이미지는 죽음에 의해 탄생했다. 죽음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두려움과 이미지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강조한다. 즉 이미지는 글자와 달리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아니다. 이미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는 성스러운 것을 숭배하고자 하고 초월적 존재를 염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물론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이후 이미지는 중세 시대 성상(聖像)으로, 르네상스 시대 미술로, 근대부터 지금까지 사진이나 영상으로 우리를 사로잡아 왔다. 저자는 “오늘날 서구인들은 그리스도 대신 할리우드를 택했다”고 했다. 우리 사회라고 많이 다를까. 소설 ‘도가니’는 이미지(영화)로 만들어진 후 장애인 성폭력 관련 법안을 바꾸는 등 엄청난 사회적 변화를 일으켰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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