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핫 이슈]“악마의 편집, 사람 하나 ‘한방에 훅’ 보낼 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4일 03시 00분


리얼리티-예능 방송프로 편집 어떻게 하길래

‘슈퍼스타K3’ 예리밴드(오른쪽). Mnet 제공
‘슈퍼스타K3’ 예리밴드(오른쪽). Mnet 제공
#1. 케이블 채널 Mnet의 간판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3’(슈스케3). 방영 때마다 엄청난 화제를 모으는 이 프로그램의 참가자인 ‘예리밴드’ 리더 한승오 씨(40)가 18일 팬 카페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슈스케는 ‘악마의 편집’ ‘막장방송’이라는 수식어를 본인들 스스로 훈장처럼 달고 다니며 유전자 조작보다도 더 정교한 영상 조작기술을 뽐내며 조작을 편집기술로 미화하고 있다. (나는 방송에서) 자신의 욕심만 차리는 인간 말종이 되어 있었다.” 결국 최종 ‘톱10’에 들며 기대를 모았던 예리밴드는 “슈스케에 참가한 걸 후회한다”는 짤막한 심경을 남기고 숙소 무단이탈이란 극단적 선택을 했다.

#2. SBS 프로그램 ‘짝’. 미혼남녀가 일주일 동안 함께 지내며 자신의 짝을 찾는 내용이다. 이달 7일 방송이 나간 직후 한 남자 출연자가 ‘제작진 보세요’란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올렸다. 그는 “제작진이 일방적인 편집으로 내용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방송엔 별다른 설명 없이 그가 화를 내며 숙소를 떠나려 한 모습만 나왔고,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을 감췄다는 얘기다. 그는 이후 한 인터뷰에서 “당시 숙소를 떠났을 때 PD가 전화해 ‘지상파 프로에서 그렇게 나가버리면 이미지가 안 좋아질 수 있으니 마무리를 잘 지으라’고 했다. 그래서 돌아가서 남은 일정을 마쳤다”면서 “방송사에서 숙소를 떠나는 장면은 사용하지 않겠다고 해 믿었는데 적나라하게 나와 당혹스러웠다”고 밝혔다,

○ ‘밑바닥’까지 건드려 캐릭터 만들어

최근 방송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편집 방식과 관련해 논란이 많다. 그 중심에 서 있는 프로그램은 역시 슈스케3. 매주 자극적인 편집으로 여러 번 논란이 됐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른 리얼리티 프로그램 역시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시즌1을 거쳐 2를 방송 중인 MBC의 ‘위대한 탄생’, 얼마 전 종영된 케이블 채널 tvN의 ‘코리아 캇 탤런트’ 등이 모두 논란에 휩싸였다. ‘조용히’ 넘어간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오히려 찾기 힘들 정도다.

과거에도 방송이 나간 뒤 일부 ‘편집 논란’은 있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빈번하지도, 과열되지도 않았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슈스케1부터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PD A 씨는 “시청률을 의식한 방송사와 제작진의 욕심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슈스케의 경우 제작 당시부터 출연자의 생활 ‘밑바닥’까지 건드릴 각오를 한다. 또 프로그램에 극적인 맛을 더하기 위해 사전 인터뷰 때부터 제작진이 ‘캐릭터 설정’에 들어간다. 그러다 보니 특정 출연자가 한 번 악역으로 굳어지면 끝까지 악역으로 남을 소지가 크다는 설명이다.


특히 슈스케는 4시간 방송을 위해 1800시간 분량의 테이프를 확보할 만큼 엄청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한다. A 씨는 “표정 하나만 보여주고도 사람 하나를 ‘훅 가게’ 할 만큼 무서운 게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영상”이라며 “많은 분량을 확보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특정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한 소스도 많다는 얘기”라고 전했다. 자칫하면 단 한순간, 무의식적으로 지었던 표정이 자신의 이미지를 좌우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 아마추어는 아마추어

최근 일반인이 등장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이런 편집 경쟁은 더욱 뜨거워졌다. 또 다른 케이블 방송 PD인 B 씨는 “비슷한 형식의 프로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다 보니 생존을 위해 편집으로 ‘장난’치려는 욕심이 생기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또 “유명 연예인처럼 훌륭한 재료가 있다면 편집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있겠느냐. 아무래도 일반인들로 요리를 하다 보니 편집 방식에 대한 고민이 늘고 자극적인 방향으로 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슈스케1, 2 제작에 참여했던 PD C 씨는 “10, 20대를 타깃으로 하는 슈스케가 지상파에 비해 편집을 자극적으로 하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렇게 나오는 모습 역시 상당 부분 수위를 조절해 걸러낸 내용”이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화면에 어떻게 비칠지를 고려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까지 관리할 만큼 노련해졌다. 일부 슈스케 본선 출연자는 제작진이 놀랄 만큼 영악하게 행동했다고 한다. 한 여성 출연자는 “여기서 놀란 척해야 하죠?”나 “이런 표정 지으면 될까요?” 같은 질문도 수시로 했다. 하지만 그래도 아마추어는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다. 밤샘 촬영 등 빡빡하게 이어지는 스케줄 속에서 끝까지 ‘정신줄’을 놓지 않고 이미지를 관리할 수 있는 참가자는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한편 Mnet의 신형관 국장은 “일반인들에겐 방송에 나온 자기 모습이 낯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편집된 영상이라면 더욱 그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일부 출연자의 경우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방송가에는 시청자들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쇼’가 아닌 실제 모습으로 인식해 논란이 가열됐다는 인식도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 씨는 “미국, 일본 등에선 시청자 사이에 리얼리티 프로 역시 ‘쇼’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자극적인 내용이 나와도 해당 출연자에 대한 인신공격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결국 국내에선 일반인이 나오는 리얼리티 프로가 등장한 지 3년도 안 된 상황이라 시청자들이 ‘미성숙한’ 반응을 보이고, 이에 일부 언론이 불을 지피면서 편집 논란이 불거졌다는 주장이다.

○ 내용 바꿔 붙이는 건 편집 or 조작?


그렇다면 편집과 조작의 경계는 있을까. 만약 있다면 어디쯤일까.

한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의 작가 D 씨는 “제작진과 출연자, 시청자가 생각하는 경계가 다 다르고, 방송사도 지상파냐 케이블이냐 등에 따라 기준이 모두 다르다”고 했다. 결국 정해진 가이드라인은 없다는 설명. D 씨는 “개인적으론 내용의 앞뒤를 자르는 수준은 편집이지만, 상관없는 내용을 갖다 붙이는 건 조작이고 왜곡이라 본다”고 했다.

케이블 방송 PD인 B 씨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와이(why)’를 추구하는 시사 프로그램과 재미를 추구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성격은 분명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시사 프로가 특정 사실을 임의로 바꿔 붙이면 왜곡이지만, 예능인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경우 극적인 전개와 재미를 위해 앞뒤 자르기는 물론이고 내용 바꿔 붙이기까지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출연자들에게 인위적으로 어떤 말을 하게 한다거나 행동을 억지로 시 킬 때만 조작”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출연자의 의지에 반해, 또는 특정 사실이 왜곡되게 편집되는 사안에도 이런 설명을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편집 논란을 줄일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공통된 편집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은 방송 관계자들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최근 편집 논란의 중심에 선 Mnet 측에서도 “일반인 출연자들의 행동이나 경력 검증 등에 대한 명시적인 가이드라인이 있으면 오히려 편하겠다”는 반응이 나온다.

방송국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는 “일반인들의 경우 방송에 비친 이미지가 그의 실제 삶 전체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사내 심의가 거의 없는 케이블 방송은 관련 프로그램의 자체 심의 수준을 2배 이상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KBS 예능국의 이승건 PD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제작 하다보면 ‘이대로 방송에 나가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방송사는 칼자루를 쥔 강자다. 출연자들로부터 편집에 대한 전권을 약속받더라도 제작진 스스로 무리한 편집을 자제해야 한다. 또 방송 전에 편집의 대략적인 방향이라도 출연자에게 미리 설명하는 ‘작지만 의미 있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

신진우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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