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죽은 자 보내는 길, 산 자들은 챙기기 바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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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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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마지막 여행’
대본 ★★★☆ 연출 ★★★☆ 연기 ★★★☆ 무대 ★★★

장례식장을 개인의 욕망이 들끓는 공간으로 그린 연극 ‘마지막 여행’. 극단 산수유 제공
장례식장을 개인의 욕망이 들끓는 공간으로 그린 연극 ‘마지막 여행’. 극단 산수유 제공
연극 ‘마지막 여행’(윤미애 작·류주연 연출)은 죽은 자를 애도하는 공간이 아닌 산 자들의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으로 장례식장을 그렸다. 이 풍경은 씁쓸하면서 또 서글프다. 자기 욕심만 내세우는 등장인물의 모습에는 현실 속 우리의 모습이 겹쳐있기 때문이다.

휴가지에서 어이없는 실족사로 숨진 윤정(김소영)의 장례식장. 남편 성진(신용진)과의 사이에 자식도 없이 횡사한 윤정의 죽음에 대해 시어머니(정유미)는 “내 아들만 불쌍하다”고 한다. 대놓고 슬퍼하지도 못하는 윤정의 친정 엄마(김현)는 구석에서 눈물을 찍어낸다. 윤정의 사고뭉치 형부(강진휘)는 장례식에 입을 옷이 없다는 핑계로 신용카드로 고가의 양복을 사 입고, 조의금을 접수하며 몰래 용돈을 챙긴다. 시아버지(이봉규)는 며느리 장례식을 핑계로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려 조문 오지 않는다고 역정을 낸다. 성진의 백수 친구 상식(이재인)은 윤정의 노처녀 친구 진경(신용숙)에게 집적대고, 성진은 부인 윤정이 자기 몰래 바람을 피운 상대라고 믿는 직장 동료(김지한)의 방문이 불편하다. 작가인 진경은 장례식 풍경을 글쓰기 소재로 메모하기 바쁘다. 장례지도사(박시유)는 최대한 순조롭게 유가족에게서 장례 비용을 받아내는 데 혈안이다.

조문객들의 취기가 오르면서 유족과 망자에 대한 험담도 시작된다. 항상 싹싹하고 정 많은 윤정은 술 잘 마시고 헤픈 여자로, 과묵한 성진은 보험금을 노리고 부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파렴치한으로 매도된다.

하지만 이 한바탕의 난장(亂場)도 장례식이 열릴 때뿐이다. 이윽고 발인 날이 밝는다. 죽은 자는 무덤으로, 산 자는 일상으로 복귀할 시간이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i: 21일까지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 2만 원.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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