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북카페]“칸! 우린 어떡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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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스칸 책 내려던 佛출판계 독자 외면에 한숨

지난달 중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미국 뉴욕의 소피텔 호텔에서 여종업원을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긴급 체포된 이후 소리 없는 탄식을 내뱉은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스트로스칸에 대한 책을 출판하려던 프랑스의 출판사와 저자들이었다.

대선이 1년도 채 안 남은 상황에서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였던 스트로스칸에 대한 저작물이 쏟아질 계획이었고 이는 출판계 전체에도 큰 활력소가 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국 또 다른 엉뚱한 곳에서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해 냈다. 놀라운 점은 당장 시장에 나오기가 어려워진 이 책의 제목들이 모두 스트로스칸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근성을 예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막스밀로 출판사의 장샤를 제라르 편집인은 수개월 전부터 ‘닥터 스트로스와 미스터 칸’이라는 제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정치 전문기자 필리프 마르티나와 알렉상드르 카라가 공저한 스트로스칸의 정치 인생을 다룬 책의 제목으로서다. 제목은 공교롭게도 성폭행 미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스트로스칸의 양면을 예감한 듯 했다. 저자들의 앵글의 초점은 ‘스트로스칸은 좌파인가, 우파인가’에 맞춰져 있었다. 이 책은 당초 5월 말에서 6월 초로 예상됐던 스트로스칸의 대선 출마에 맞춰 출간될 예정이었다. 이 책은 스트로스칸, 부인 안 생클레르와의 미공개 인터뷰들과 자료 추적을 통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17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룰 것으로 전망됐던 스트로스칸의 정치적 역정을 심층 분석한 것이었다. 그러나 제라르 편집인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 지금 스트로스칸의 정치 인생은 이제 관심을 끌지 못한다”며 “이 책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출판 날짜도 무기한 연기된 상황이다.

그라세 출판사에서는 역시 정치 기자 클로드 아스콜로비치 씨가 스트로스칸에 대한 저작물을 끝낸 상황이었다. 제목은 ‘DSK라는 미지의 인물’이었다. 출판사는 6월에 책을 출간할 계획이었다. 이 책은 480쪽에 걸쳐 단순히 정치인으로서가 아닌 스트로스칸이라는 인물 자체와 그의 다중적인 면을 심층 해부하고 있었다. 이 책은 그라세가 올해 내놓거나 앞으로 내놓을 정치 분야 서적 가운데 가장 기대를 갖고 있었던 작품 중의 하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출판사 관계자는 그러나 “올해에는 출판하기가 사실상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입장을 내비쳤다.

스트로스칸 사건이 터지기 며칠 전 출간돼 오히려 살아남은 책도 있다. 미셸 토브망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의 진정한 로망’(사진)이 그것. 이 책은 오히려 스트로스칸 사건이 터진 뒤 서점으로부터 책을 더 찍어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모망 출판사 측은 “스트로스칸이란 인물을 둘러싼 호기심들이 쏟아지는 시점이었다. 4판까지 2만2000부를 찍었다”고 말했다. 이 책의 한 장은 스트로스칸의 여자 문제를 다뤘다. 특히 2002년 스트로스칸이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다고 주장했던 앵커 출신 작가 트리스탄 바농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룬 부분까지 포함돼 있어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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