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기름띠 이겨낸 인간띠… 기적은 계속된다

  • Array
  • 입력 2011년 6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태안 해변길 120km 단계별 개통

솔모랫길을 따라 걷다 보면 찾게 되는 청포대해변. 몽산포와 마검포 사이로 드넓은 해변이 썰물 때마다 거대한 사막으로 변한다. 태안=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솔모랫길을 따라 걷다 보면 찾게 되는 청포대해변. 몽산포와 마검포 사이로 드넓은 해변이 썰물 때마다 거대한 사막으로 변한다. 태안=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솔모랫길의 드르니항으로 가는 도중에 지나는 염전마을. 소금 긁기 체험도 한다.(위)
안면도 해변을 섭렵하는 노을길의 삼봉해변에서 만나는 고즈넉한 곰솔나무 숲길.
솔모랫길의 드르니항으로 가는 도중에 지나는 염전마을. 소금 긁기 체험도 한다.(위) 안면도 해변을 섭렵하는 노을길의 삼봉해변에서 만나는 고즈넉한 곰솔나무 숲길.
요즘 여행사가 울상이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해외여행자가 크게 줄어서다. 일본을 찾는 관광객이 줄어든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다른 나라도 찾지 않는 다는 것. 왜 그럴까. 이유는 하나,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다. 상상 이상의 대참변이 이웃한 우리에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재난후유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곳이 있다. 2007년 기름유출사고를 당한 충남 태안군이다. 태안의 자연은 기적처럼 되살아났다. 회복에 10년 이상 걸릴 거라는 예상을 뒤엎었다. 그건 손으로 기름을 걷어낸 주민, 불원천리 찾아와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은 123만 명 자원봉사자의 아름다운 동행 덕분이다.

지난해 그리고 최근, 태안해변을 취재하며 새삼 놀랐다. 해변은 옛 모습 그대로 깔끔했고 송림 숲 그늘은 오토캠핑객 차지였다. 만리포해변은 해변도로 정비 등으로 더 좋아졌다. 태안반도를 종단하는 국도 77호선도 4차선 확장에 들어갔다. 1000개가 넘는 펜션도 손님맞이 채비로 분주하다.

태안은 되살아났다. 내가 보기에는 예전보다 나아졌다. 대한민국 최고 해변으로 손색이 없다. 아쉬움이라면 이런 사실이 태안 밖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이달 4일 강원 강릉 정동진을 출발해 24일 태안 정서진(만리포해변)에 닿기 위해 땡볕 아래 지금도 걷고 있는 ‘태안사랑 자연사랑 순례단’의 정동정서 도보행진도 시작은 태안을 알리기 위해서다.

올해 태안에는 또 다른 명소가 태어났다. 몽산포∼꽃지 25km를 필두로 내년 66km(학암포∼만리포∼몽산포), 2013년 29km(꽃지∼영목항) 등 태안반도를 남북으로 이을 국립공원관리공단 태안해안국립공원사무소의 300리(120km) ‘태안 해변 길’이다. 이걸 통해 태안을 찾는 발길이 다시 이어지길 고대하며 23일 개통을 앞두고 막바지 손질이 한창인 태안 해변 길을 찾았다.

7km 모래어덕 이어진 몽산포

몽산포해변. 조금 북쪽의 만리포와 더불어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동시에 시작된 여름해변 바캉스 문화의 발원지다. 거대한 반달형 해변은 청포대 지나 남쪽 마검포까지 무려 7km. 해변은 모래언덕(사구)으로, 다시 곰솔나무 빽빽한 송림으로 이어지니 숲 그늘에서 모래언덕 아래 광대한 해변과 바다를 바라다보며 쉴 수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해변이다.

2013년까지 조성할 태안해변 길 120km(만리포∼몽산포 38km는 유람선을 이용하는 해상로) 중 23일 노을길(드르니항∼꽃지·12km)과 더불어 가장 먼저 문을 여는 솔모랫길(몽산포∼드르니항·13km)의 들머리가 바로 여기, 몽산포 주차장(탐방안내센터)이다. 숲 속으로 난 길로 캠핑텐트를 지나 300m쯤 걸으니 해변의 모래언덕. 빨간 해당화가 해풍에 한들거리는 풀숲을 배경으로 ‘4코스 솔모랫길입니다’라고 쓰인 문주(門柱)가 보인다. 길은 풀숲의 사구 모래밭을 따른다. 중간 중간에 숲으로 우회하는 자연 탐방로도 있고 비오톱(biotope·나뭇가지를 쌓아 만든 벌레서식지)도 있다.

바닷바람 맞으며 모래해변이 눈 아래로 바다와 더불어 시원하게 조망되는 사구의 모래밭을 걷노라니 이런 호사가 있을까 싶다. 바로 옆은 곰솔나무가 숲을 이루고 땡볕에 지칠 즈음이면 모래해변 길은 송림 숲 속으로 접어드니 해변걷기 코스로 이만한 것이 있을까 싶다. 해당화까지 만발한 덕에 나도 모르게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로 시작하는 흘러간 옛 노래를 흥얼거린다.

도중 달산포 북쪽(몽산포에서 2.1km)에서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형성된 습지도 만난다. 가끔 고라니도 출몰한다니 태안 자연에 경외감까지 느껴진다. 거기서 숲으로 들어서니 ‘대한정형외과학회’와 태안해안국립공원사무소가 함께 세운 특별한 안내판이 보였다. 전문의 4명이 공원사무소의 요청으로 직접 이 길을 걸어 본 뒤 정리해준 ‘걷기와 건강’ 지상강좌다. 내용은 이렇다. 모랫길은 걷기가 아스팔트보다 2배 이상 힘들고 에너지도 2.5배가량 소모된다. 갑자기 걷는 양을 늘리면 정강이뼈 안쪽에 통증이 발생(신스플린트)할 수 있고 발뒤꿈치 부상(족저근막염) 우려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등등의 내용이다.

해변남단 마검포(몽산포 5.1km 지점)를 지나니 ‘별주부마을’(남면 원청리)이다. 해변에는 섬처럼 보이는 여(썰물 때만 드러나는 바위)가 있다. 별주부전에서 토끼가 자라에게 ‘내 간을 꺼내어 말리는 곳’이라고 거짓말 한 데서 유래된 ‘자라바위’다. 거기 올라서니 주변 바다와 숲, 해변과 섬 풍광이 360도 파노라마로 다가온다. 예서부터는 별주부마을을 지나 삼밭저수지를 거쳐 염전을 향한다. 염전에서는 바닥의 소금을 긁어모으는 체험도 한다.

보행자 전용다리도 건설중

염전을 지나면 드르니항. 솔모랫길의 한 끝이다. 해변도 내륙으로 파고든 바다로 인해 끊긴다. 그 물 건너가 안면도다. 사실 안면도는 섬이 아니었다. 조선 인조 때 공물을 수월히 나르고자 이 드르니항과 안면도 사이 백사장을 파 물길을 들이면서 섬이 됐다. 그게 지난 세기에 다리(국도 77호선)로 연결되면서 ‘연륙도’라는 섬 아닌 섬이 됐지만. 이 드르니항과 백사장항도 내년엔 다리로 연결된다. 태안 해변 길 걷기여행자를 위한 다리로 자동차는 다닐 수 없다. 그때까지는 기존 다리로 우회(5.5km)하게 되는데 태안해안국립공원사무소는 걷기여행자의 편의를 위해 셔틀버스를 무료로 운행한다.

백사장항은 태안반도 항·포구 가운데 위락시설(식당 술집 등)로는 가장 규모가 큰 곳. 꽃지까지 해변으로 12km나 이어지는 ‘노을길’의 들머리이기도 하다. 백사장해변은 삼봉과 기지포로 이어지고 길 역시 사구를 따른다. 기지포는 특별했다. 자동차 통행으로 훼손된 사구를 원래 제 모습으로 완벽하게 되살린 곳이어서다. 그 비결은 길을 막고 나무 데크를 활용한 자연 관찰로 설치. 모래언덕은 굳건했고 그 위로는 키 큰 초록 풀로 뒤덮였다. 이곳은 휠체어를 타고도 갈 수 있다. 노을길 일부 구간(삼봉∼기지포)에 별도로 나무 데크(총 1004m)를 설치한 것인데 데크는 모래언덕 아래 해변까지 이어졌다.

태안반도는 길다. 해안선이 230km나 된다. 곳곳에 들를 곳도 많다. 천리포수목원, 안면도 자연휴양림, 백제 마애삼존불 등등. 펜션은 1000개를 훌쩍 넘기며 학암포 몽산포 등지에는 오토캠핑장도 있다. 포구 항구마다 생선이 넘쳐난다. 그런 태안에 해변 정취를 만끽하는 해변 길까지 생겼으니 뚜벅이(걷기여행자)들이 몰릴 것은 당연지사. 한여름 피서객들이 몰려오기 전에 수확이 시작된 태안 명물 6쪽마늘도 살 겸 솔모랫길과 노을길로 걷기여행을 떠나봄이 어떠하실지.

■ “몽산포, 삼봉해변 주변이 가장 아름다워”

“북한산 둘레길 조성 때 얻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걷기의 명품’ 코스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조성했습니다.”

지난해 국립공원관리공단 태안해안국립공원사무소에 부임해 ‘태안 해변 길’ 조성사업을 현장에서 지휘해온 김태 탐방시설과장(43·사진)의 말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역시 땅 확보. “땅주인의 협조로 잘 해결됐다”며 김 과장은 주민의 협조에 감사했다.

23일 개통할 구간은 솔모래길과 노을길 두 개. 두 해변길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을 묻자 그는 “몽산포∼청포대 4km(태안반도)와 삼봉해변∼창정교쉼터 2.6km(안면도) 구간”이라면서 “꽃지해변의 할아비할미 바위가 조망되는 방포도 멋지다”고 덧붙였다. 그는 “기지포해변에는 장애우도 사구와 해변, 바다를 즐길 수 있도록 나무데크(300m)를 설치했으니 많이 이용해 달라”는 당부와 더불어 “스마트폰을 태안 해변길에서 오디오 가이드로 활용하는 애플리케이션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 박정희 대통령이 휴가보냈던 펜션


박정희 전 대통령 가족이 머물렀던 객실이 보존된 만리포해변 피노키오 펜션. 모래언덕에 계단형으로 건물이 배치됐는데 사진은 정원의 카페.
박정희 전 대통령 가족이 머물렀던 객실이 보존된 만리포해변 피노키오 펜션. 모래언덕에 계단형으로 건물이 배치됐는데 사진은 정원의 카페.
만리포에서 특별한 숙소를 찾아냈다. 해변과 맞닿은 포장도로변의 사구(모래언덕) 위에 자리 잡은 ‘피노키오 펜션’이다. 이곳은 1970년 고 박정희 전 대통령 가족이 여름휴가를 보낸 ‘킹 호텔’. 당시 호텔 주인은 서산 해미비행장에 군수품 수송을 담당했던 주한미군(해군 중령). 박 전 대통령 가족은 군함을 타고 왔는데 경호실은 만리포 바다와 해변이 한눈에 조망되는 데다 뒤로 산, 좌우에 아무 시설도 없어 안전가옥으로 삼았을 것으로 보인다.

피노키오 펜션은 송림 우거진 산등성의 모래언덕에 객실 9개(온돌 1실, 침대 8실)와 카페로 구성됐는데 모두 단층. 건물(카페 제외)은 모두 1961년 상량 당시 그대로다. 바뀐 것이라면 원목을 덧대어 가린 외벽과 현대식으로 리노베이션한 실내, 그리고 야외조경. 건물이 50년간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태안해안국립공원과 인접해 일절 개축 허가가 나지 않아서다.

박 전 대통령 가족이 머물렀던 객실(태양실)로 들어섰다. 창밖으로 만리포 바다가 훤히 조망되는 넓은 방에는 킹사이즈 침대와 소품 가구만 놓였다. 한 벽을 장식한 박 전 대통령 가족의 단란한 모습 사진이 이 방의 역사를 말해주었다. 이 방은 찾는 이가 많다. 박 대통령의 ‘기(氣)’를 받겠다며 일부러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펜션 주인은 2009년 대림자동차 대표이사를 끝으로 은퇴한 박노균 씨(63) 부부. 박 씨는 부인 장순창 씨(58)와 단둘이서 직접 낡은 건물을 펜션으로 고쳐 2009년 11월부터 운영 중이다. 이곳의 특징은 주인 부부가 아침식사(토스트 계란프라이 과일 우유 커피)까지 직접 만들어 제공하는 B&B(Bed and Breakfast)라는 점. 카페에서는 커피와 음료, 와인도 파는데 부인 장 씨는 자격증을 지닌 바리스타다. 카페 실내도 아늑하다. 마룻바닥에 간벌한 소나무를 잘라 직접 만든 나무탁자가 놓였고 매킨토시 앰프와 탄노이 스피커로 매칭된 고급 오디오에서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것도 여럿 보인다. 작은 흉상과 다양한 사진, 박 전 대통령을 소개하는 팸플릿 등등.

“역사적 평가는 분분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특별한 분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처럼 그 시절에 장교(ROTC 출신)로 근무한 사람에게는 말이지요.” 박 씨는 “퇴직 후 뭔가 남을 위해 일하는 삶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마침 투자금 대신 이 건물을 받게 돼 편한 휴식을 돕는 B&B 일을 시작하게 됐다”면서 “원하시는 손님에게는 천리포수목원을 무료(하루 10명) 입장시켜 드리고 가이드도 한다”고 말했다.

피노키오 펜션=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979-15(만리포 노래비에서 우회전 200m). 객실 취사 대신 야외 바비큐장 이용. 넓은 데크에 그늘막 치고 의자와 탁자가 놓인 야외 휴게공간이 있다. 해당화 등 야생화 꽃밭도 있다. 숙박료(2인 1실 기준)는 크기별로 8만, 13만, 18만 원(비수기·주중) 및 15만, 20만, 25만 원(성수기·주말). 생일 등 특별한 날에는 객실 이벤트도 가능(예약 필수). 30년 경력의 선장이 안내하는 체험낚시(10명까지 50만 원)도 일주일 전 예약(010-6395-0852)하면 가능. 041-672-3824, www.pinocchiopension.com■ Travel Info

안내
태안해안국립공원사무소 taean.knps.or.kr 041-672-9737

태안별미

조개구이 만리포 해변도로의 군산회수산(주인 김준영 씨). 주인 김 씨는 인근 모항항(국가항)에서 직거래 구입한 싱싱한 해물로 조개구이와 활어회를 내온다. 조개구이 재료는 가리비 동죽 개조개 움피 돌조개 자연산홍합. 키조개는 속만 파내 냄비에 넣고 조개 국물과 함께 갖은 양념, 양파 고추와 더불어 찌개처럼 끓여낸다. 피노키오 펜션 바로 옆에 있다.

해물짬뽕
노을길 들머리인 백사장항(안면도 북단)의 주차장 부근 골목의 ‘길목식당’(041-672-0716)에서 맛본다. 해물을 듬뿍 넣어 4500원에 판다. 굴철(11월∼이듬해)에는 굴 짬뽕(7000원)이 별미다. 연중 무휴. 노을길 셔틀버스 탑승장에서 200m 거리.

꽃게장·우럭젓국 태안등기소 길 건너편에서 35년째 간장게장을 담가온 윤순철 씨(64·여)의 ‘토담집’(태안읍·041-674-4561)이 명소. 매년 봄 암게만 구입해 냉동했다가 꺼내 매일 담그는데 상에 내는 것은 사흘 숙성시킨 것. 게장용 간장까지 직접 담그고 비린 맛을 없애기 위해 벌집까지 넣는다. 우럭젓국은 염장 건조한 우럭을 황태탕처럼 끓인 것인데 우럭도 보리우럭(봄철 보리가 팰 때 잡히는 것)만 쓰고 국은 미리 살을 발라 두었다가 손님상에서 두부를 넣고 즉석에서 끓여 낸다.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

태안=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