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남자의 로망 여자의 선망… 국내서 월100대 넘게 팔리는 ‘럭셔리 스포츠카’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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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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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남자는 럭셔리 스포츠카를 꿈꾸는가.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성능, 소름이 돋게 하는 짜릿한 엔진음, 주위의 시선을 모두 빨아들일 것 같은 디자인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일까. 사진은 2억4000만 원 대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S’ FMK 제공
왜 남자는 럭셔리 스포츠카를 꿈꾸는가.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성능, 소름이 돋게 하는 짜릿한 엔진음, 주위의 시선을 모두 빨아들일 것 같은 디자인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일까. 사진은 2억4000만 원 대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S’ FMK 제공

여자에게 ‘에르메스’ ‘샤넬’ ‘루이뷔통’이 있다면 남자에겐?

‘페라리’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벤틀리’ ‘포르셰’ 같은 럭셔리 스포츠카가 있다. 한국 국민의 소득이 높아지면서 패션 명품 시장이 급격히 커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럭셔리 스포츠카 시장도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스포츠카의 대명사인 포르셰는 2003년 국내에서 80대가 팔렸지만 지난해에는 708대로 9배 가까이 늘었고, 올해는 4월 말까지 매달 평균 100대가 팔려 연말까지는 1000대를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다른 브랜드의 작년 연간 판매량을 보면 가격이 3억 원대인 벤틀리는 연간 80대, 2억 원인 마세라티와 3억∼5억 원대인 페라리는 각각 50대가량 팔렸다.

개인 유동자산이 최소 5억 원에서부터 모델에 따라서는 100억 원 이상 돼야 잠재고객으로 분류될 정도로 소득 극상위계층만이 누리는 이 초고가 명품은 중산층이 조금만 무리하면 구입할 수 있는 ‘샤넬백’과는 차원이 다르다.

3억 원대 럭셔리 스포츠카의 경우 감가상각과 보험료, 세금, 기름값, 정비료 등을 포함한 연간 유지보수비용은 최소 5000만 원이다. 단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웬만한 직장인 연봉, 혹은 샤넬백 10개가 매년 공중으로 사라진다.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S' 후면 FMK 제공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S' 후면 FMK 제공
왜 남자들은 이런 고가의 스포츠카에 빠져들까. 기자는 지난 1년간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S’, 벤틀리 ‘콘티넨털 슈퍼스포츠’, 포르셰 ‘카레라 911 GTS 카브리올레’ 등을 시승하며 그 마음을 직접 체험해봤다.

▼최고의 가격-속도-디자인, 남자를 유혹하다

디자인과 성능, 배기음에 대한 판타지

실내 부품 하나하나가 모두 명품으로 제작된 벤틀리 ‘콘티넨털 슈퍼스포츠’는 최고시속이 329km에 이른다.
실내 부품 하나하나가 모두 명품으로 제작된 벤틀리 ‘콘티넨털 슈퍼스포츠’는 최고시속이 329km에 이른다.
럭셔리 스포츠카의 성능은 이동이 목적인 일반 자동차와는 차원이 다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에 이르는 시간은 기본적으로 5초 이하이고, 그중에서도 슈퍼카로 불리는 모델은 4초 이하다. 시속 200km는 13∼15초면 해치운다. 최고속도는 시속 300km를 넘나든다.

‘속도를 낼 곳이 어디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400∼600마력대인 이 ‘괴물’들은 짧은 직선구간만 있어도 시속 200km는 우습게 내고, 직선이 길게 이어지는 고속도로에서는 300km 이상도 가능하다. 워낙 안정감이 높아 시속 200km 정도로 텅 빈 고속도로를 달리면 별로 불안감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럭셔리 스포츠카 오너의 99.9%는 시속 200km를 넘겨 달린 적이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국내 고속도로의 최고 제한속도가 시속 110km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은 태생 자체가 ‘범죄’인 셈이다.

기계적인 성능이 럭셔리 스포츠카의 필수요소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쩌면 디자인과 배기음일지도 모른다.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S’가 대표적이다. 배기량 4.7L, 최대출력 440마력, 시속 100km까지 가속력 5.0초, 최고속도 시속 295km다. 절대적인 수치는 메르세데스벤츠나 BMW의 고성능 세단보다 약간 뒤지는 수치다.

하지만 디자인이 주는 존재감은 고출력 세단이나 일반 스포츠쿠페의 추종을 불허한다. 잡아먹을 듯이 입을 벌리고 있는 커다란 인테이크 그릴과 울룩불룩 솟아오른 근육질 펜더, 아름다운 여인의 몸매를 연상시키는 보디라인은 한동안 넋을 잃고 보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다.

포르셰 '911 카레라 GTS 카브리올레’
포르셰 '911 카레라 GTS 카브리올레’


게다가 엔진음과 배기음은 오케스트라 연주가 부럽지 않다.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란투리스모S의 노트(note)는 페라리나 포르셰보다 한 수 위였다. 지하주차장에서 고요히 잠자고 있는 그란투리스모S의 시동스위치를 눌렀다. 잠시 시동모터가 도는 소리가 들린 뒤 사자의 포효가 크게 울려 퍼진다. 넓은 주차장 공간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여기까지는 여느 V8엔진 고성능 자동차와 비슷하다.

그러나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우렁찬 배기음을 가진 다른 스포츠카들이 음색은 좋다하더라도 단조로운 반면, 그란투리스모S는 분당 엔진회전수(RPM)에 따라 연주가 된다. 바리톤에서부터 테너, 카운터테너까지 1500RPM부터 8000RPM까지 500RPM 단위로 다양한 음색이 나온다. 운전자는 자신도 모르게 건물에 반사되는 배기음을 들으려고 창문을 조금 열게 되고 RPM을 오르내리며 연주를 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연료소비효율(연비)은 L당 3.5km로 떨어진다.

그란투리스모S의 경우 매혹적인 디자인에다 ‘배기음 연주’까지 듣고 나면 성능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3km 대의 연비도 오케스트라를 내가 지휘했다고 생각하면 아깝지 않다.

페라리나 포르셰 벤틀리도 브랜드의 특성에 따라 이 같은 성능 외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럭셔리 스포츠카를 구입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한땀 한땀 장인의 정성이 깃든 특별함

벤틀리 '콘티넨털 슈퍼스포츠’
벤틀리 '콘티넨털 슈퍼스포츠’


기본 가격이 3억7500만 원인 벤틀리 ‘콘티넨털 슈퍼스포츠’의 구석구석을 보면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명품 핸드백 소재로도 손색이 없는 최고급 소가죽이 시트에서부터 실내 구석구석까지 마감재로 사용됐다. 주름잡힌 곳 하나 없이 깔끔한 라인을 그리는 가죽 재단 솜씨와 바느질은 감탄을 자아낸다. 20년 이상 가죽을 다뤄온 장인들의 솜씨다. 시동키, 기어레버, 송풍구, 스위치 하나하나 따로 떼어놓고 봐도 명품 액세서리 같은 느낌을 준다. 실내 바닥부분은 물론이고 트렁크 마감재질까지 고급 카펫이 깔려 있고 심지어 비상 삼각대 덮개도 고급 가죽이다. 조금이라도 더 럭셔리해 보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하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 것과 같은 엔진과 배기사운드를 개발하기 위해 마세라티는 2명의 자동차 튜닝전문가 외에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를 자문위원으로 참여시켰다. 마세라티 엔진개발팀은 1인당 5000시간 이상을 투입하며 V8엔진이 내는 거친 사운드를 튜닝했다. 이들은 모든 엔진회전영역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려고 저회전에서 고회전까지 각 RPM 영역마다 악보까지 그려서 테스트했다. 엔진의 공기 흡입구조와 배출시스템 관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이 두 부분이 엔진소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모든 럭셔리 스포츠카는 이런 노력과 과잉 투여의 산물이다. 그래서 가격이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천박한 우월감 혹은 마니아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카브리오’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카브리오’



슈퍼카들을 타고 다니면 행인들은 물론이고 주변 운전자의 눈길을 한 몸에 받게 된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우쭐해지는 측면도 없지 않다. 샤넬, 루이뷔통은 가짜도 많지만 이런 럭셔리 스포츠카는 가짜가 있을 수가 없어 곧바로 부(富)를 뽐내는 수단이 된다. 남자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고급 자동차이고, 그 정점에 럭셔리 스포츠카들이 자리 잡고 있다.

길거리에서 슈퍼카를 마주친 연인들의 반응을 보면 묘하다. 보통 남자들은 슈퍼카를 발견하면 본능적으로 눈이 번쩍 하지만 곧바로 애써 외면하려 한다. 옆에 있는 여자친구는 고개를 쭉 빼고 “저건 무슨 차야. 얼마짜리야”라고 물어본다. 남자들은 약간 미간을 찡그리거나 일부러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려 한다. 그러고는 “겉멋 든 졸부들이나 타는 거야. 고장이 많아서 난 돈 있어도 안 타”이런 대답을 해준다. 부러우면 지는 거니까.

운전자들의 반응도 색다르다. 슈퍼카는 신호등이 녹색등으로 바뀌었을 때 출발이 굼떠도 경적 세례를 받는 일이 거의 없다. 끼어들려고 방향지시등을 켜면 쉽게 양보를 받는다.

상당수 럭셔리 스포츠카 오너들은 이런 모습들을 즐긴다. 소개를 받아 레스토랑에서 처음 봤을 땐 도도하게 굴던 그녀들도 주차장에 내려와 젠틀하게 페라리의 문을 열어서 태워주면 고분고분하게 변하기 일쑤다. 천박한 우월감과 부의 과시지만 그런 방식이 잘 먹히니 남자들에겐 럭셔리 스포츠카는 로망일 수밖에 없다. 공공연하게 이런 부분은 마케팅 수단이 되기도 한다. 람보르기니 홍보영상 중에는 자신들의 슈퍼카를 타고 다니면 자동으로 미녀들의 전화번호가 수집되고, 고급 클럽의 입장권이 생긴다는 내용이 재미있게 표현돼 있다. 럭셔리 스포츠카의 본질 중 절반은 사실 이런 천박한 자본주의적 성향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물론 인생에 활력을 주고, 열심히 일한 자신에게 선물을 하거나, 스포츠 드라이빙에 대한 특별한 기호 때문에 럭셔리 스포츠카를 구입하는 부류도 적지는 않다. 이유야 어찌됐든 럭셔리 스포츠카 혹은 슈퍼카를 구입한 ‘남자’는 인생의 여러 가지 꿈 중에서 최소한 하나는 이룬 셈이다.


▼대기업 오너들의 광적인 슈퍼카 사랑… 수백대 모으기도

지난해 출시된 페라리 ‘458 이탈리아’는 3.4초만에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할 수 있다. 기본 가격이 3억7000만 원으로 자동차 마니아인 대기업 오너들에겐 ‘Must Have’ 아이템이다.
지난해 출시된 페라리 ‘458 이탈리아’는 3.4초만에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할 수 있다. 기본 가격이 3억7000만 원으로 자동차 마니아인 대기업 오너들에겐 ‘Must Have’ 아이템이다.
일부 대기업 오너의 슈퍼카 사랑은 유별나다. 특히 범삼성 계열의 오너들이 많은 편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대표적이다. 이 회장은 200대가 넘는 슈퍼카를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포르셰 등 웬만한 올드카부터 최신 모델까지 대부분 소유하고 있다. 국내에 공식 수입되지 않은 부가티, 쾨닉세그, 매클래런, 스파이커 등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단지 소유에 그치는 게 아니라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레이서처럼 운전하며 차의 성능을 파악하고, 국내 일류 레이서를 고용해 개인교습을 받기도 했다. 슈퍼카를 가장 슈퍼카답게 사용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슈퍼카에 대해선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로 여겨지고 있으며 운전 실력도 상당히 뛰어나다.

삼성 이 회장의 조카인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그에 맞먹는다. 페라리 마니아로 알려진 CJ 이 회장은 다양한 브랜드의 슈퍼카 수십 대를 소유하고 있다. 게다가 그는 해외에서 페라리로 직접 레이싱 대회에 출전해 상위권 성적을 올리기도 했다.

역시 삼성 이 회장의 조카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페라리 포르셰 메르세데스벤츠 등에서 나온 슈퍼카 수십 대를 소유하고 있으며 운전을 즐긴다.

한편 전두환 전 대통령과 사돈인 이희상 운산그룹 회장도 페라리 마니아다. 그는 투자했던 국내 페라리 딜러가 부도를 내자 아예 딜러권을 인수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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