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누가 이 아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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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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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왜 싸우는가?
김영미 지음 300쪽·1만3000원·추수밭

리비아 사태가 연일 세계 신문의 주요 지면을 채우고 있다. 세계의 이목이 이 나라에 쏠려 있지만 분쟁이 진행 중인 곳이 리비아뿐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내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잊을 만하면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한다.

저자는 10년 넘게 이런 분쟁 지역을 찾아다니며 카메라에 담아 왔다. 분쟁 지역 전문 PD가 된 것은 동티모르발 신문기사 때문이었다. 그는 서른 살이 되던 해 동티모르 내전에 휩쓸려 학살당한 여대생의 사진과 사연을 신문기사로 접하고 의문을 품었다. 어떤 상황이기에 꽃다운 학생들이 그처럼 비참하게 죽어야 했을까. 그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카메라 가방 하나 달랑 메고 동티모르로 떠났다.

그 뒤 저자는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레바논, 체첸 등 위험한 분쟁지역을 찾아 다녔다. 동원호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을 때는 소말리아 해적의 본거지를 직접 방문하고 실상을 촬영해 국내에 알렸다. 그렇게 직접 취재한 내용, 자료를 통해 파악한 분쟁지역의 역사와 현실을 책에 담았다.

이야기는 레바논에서부터 시작한다. 지중해를 끼고 있어 풍광이 아름다운 레바논의 평화가 흔들리기 시작한 계기는 이스라엘의 건국이었다. 이스라엘의 박해를 피해 팔레스타인을 탈출한 난민들이 레바논으로 넘어와 난민촌을 만들기 시작했다. 난민촌은 곧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근거지가 됐다.

이스라엘 군대는 PLO를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레바논의 국경을 자주 넘어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레바논 국내에선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종교 갈등이 불거졌다. 세력이 거의 대등했던 두 종교는 오래 평화를 유지해 왔지만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이슬람교도 사이에 반(反)이스라엘 감정이 생겼고, 이는 자국 내 기독교인에 대한 미움으로 확대됐다. 레바논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다툼에 뜻하지 않게 연루된 것도 억울한 마당에 종교로 인한 내분까지 안게 된 것이다.

저자는 레바논 남부 도시 시돈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만난 의사 얘기를 들려준다. 병원 건물에 총알 자국이 무수히 있을 정도로 위험한 이 지역에서 돈 한 푼 벌리지 않는 병원을 운영하는 이유를 묻자 의사는 이렇게 답했다. “레바논이 전쟁 중이라 해도 사람은 살아야지요. 아이들에게 예방접종도 해야 하고요. 이스라엘이고 팔레스타인이고 따지고 싶지 않군요. 사람이 살아야 싸우기도 하는 것 아닙니까. 난 최소한 사람을 살리는 직업을 하는 겁니다.”

저자는 2001, 2006년 등 여러 차례 아프가니스탄을 취재하며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탈레반을 지지하는 이유를 직접 확인했다. 그 배경에는 아편이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아편의 해악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2006년 여름 양귀비밭을 방문했을 때 한 농부는 왜 외국인들이 아편 농사를 말리느냐며 항의했다. 그런 상황에서 탈레반은 아편 농부들에게 ‘미군과 유엔이 아편 농사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도와줄 테니 아편을 생산해서 번 돈의 일부를 군자금으로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탈레반이 설치한 폭탄에 미군이 희생된 사건을 취재하기도 했다. 미군이 사건 현장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17세 청년을 사살하는 일이 발생했다. 청년의 장례식을 취재하러 간 저자는 슬프게 우는 동생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나중에 알아보니 당시 열다섯 살이던 그 소년은 형의 복수를 하기 위해 탈레반 병사가 되어 아프가니스탄 남부로 떠났다.

책을 쓴 배경에 대해 저자는 “아들에게 지구촌 구석진 곳의 현실을 들려주기 위해”라고 말한다. 취재 틈틈이 메모한 내용들은 풍성한 내용의 바탕이 됐다. 아이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문체와 상세하고 쉬운 설명 덕에 분쟁의 배경과 실상이 쏙쏙 머리에 들어온다.

소말리아 해적을 취재하고 쓴 부분을 보면 그 나라에서 해적이 활개 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동원호는 2006년에 납치돼 선원들이 140일 넘게 잡혀 있었다. 그해 여름 취재를 위해 소말리아의 수도와 해적들의 소굴인 하라데레 마을 등을 둘러본 저자는 “소말리아를 해적의 나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굶주림이다”라고 설명한다.

소말리아는 1960년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했지만 부족 간 분쟁으로 나라가 갈라졌다. 오랜 분쟁과 가뭄으로 식량 사정이 악화됐다. 유엔평화유지군이 투입됐으나 평화를 이뤄내지 못하고 철수했다. 국제사회가 포기하자 소말리아는 아무것도 없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은 양의 나무 열매로 하루 끼니를 해결했다. 굶주림이 온 땅에 퍼졌을 때 나타난 것이 해적이다. 취재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그들은 해적질이 범죄라는 죄의식조차 없어 보였다. 한번은 해적 마을에서 열 살 꼬마에게 이 다음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었다. 아이는 커서 아빠처럼 해적이 되어 많은 외국 배를 납치할 거라고 대답했다.”

이 밖에도 파키스탄, 이라크, 시에라리온, 체첸, 콜롬비아, 미얀마 등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을 책은 차례로 소개한다. 저자는 이런 지역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구 저편에 우리와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그들과 얼굴을 마주할지 모르니까.”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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