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둘에 로맨스소설, 한 꺼풀 벗은 한승원

  • Array
  • 입력 2011년 3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 老작가와 묘령 여인의 여행 다룬 ‘항항포포’ 펴내

“여성과의 애틋한 로맨스랄까. 영화 한 편 찍는 기분으로 써내려갔죠.” ‘다산’‘추사’ 등 묵직한 역사소설을 써왔던 소설가 한승원 씨가 로맨스 소설 ‘항항포포’를 내며 일흔둘의 나이에 감각적인 작가로 변신했다. 동아일보 DB
“여성과의 애틋한 로맨스랄까. 영화 한 편 찍는 기분으로 써내려갔죠.” ‘다산’‘추사’ 등 묵직한 역사소설을 써왔던 소설가 한승원 씨가 로맨스 소설 ‘항항포포’를 내며 일흔둘의 나이에 감각적인 작가로 변신했다. 동아일보 DB
‘다산’ ‘추사’ 등 굵직한 역사소설을 주로 써온 소설가 한승원 씨가 일흔 둘의 나이에 말랑말랑한 로맨스 소설을 펴냈다. 제목은 ‘항구와 포구들’이라는 뜻의 항항포포(港港浦浦·현대문학).

예순이 넘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여제자와 사랑에 빠지고, 제자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를 잊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다시 묘령의 여인과 동행한다는 줄거리. 번뇌하는 비구니의 얘기를 다루며 불교에 심취(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했거나 정약용(‘다산’) 김정희(‘추사’) 등 역사적 인물을 진중하게 다뤘던 그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단단히 마음먹고 시도한 문학적 변신이다.

한 씨는 6일 “소설가가 한편 한편 소설을 쓰는 것은 껍질을 벗는 것과 같다. 이 작품에서는 젊은 감각으로 감각적인 글을 아름답게 쓰고 싶었고, 이제 그것(그 변신)을 독자로부터 확인받고 싶다”며 웃었다.

작품 속에는 그의 요즘 고민이 그대로 드러난다. 주인공인 베스트셀러 소설가 임종산은 자신을 ‘서재에 갇혀 사는 무기수’ ‘자본주의 세상에 적응하며 살기 위해 돈이 되는 글을 쓰는 노역(勞役)의 무기수’라고 부른다. 아내에게 “나 지금 살고 있는 것이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지 어쩌는지 알 수가 없어”라고 말하곤 훌쩍 여행을 떠난다. 작가 한 씨와 주인공은 얼마나 겹치는 것일까.

“임종산은 제 분신과도 같은 존재예요. 요즘 들어 제가 길을 잃어버리고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인생의) 길을 가다가 길을 잃어버렸고, 그 길을 다시 찾아간다는 일종의 구도(求道)적 소설이죠.”

임종산은 출강하던 학교 제자인 소연과 애정 행각을 벌이지만 소연은 암으로 죽는다. 소연을 잊기 위해 집을 떠난 임종산은 여행길에 우연히 자신을 유혹하는 미스코리아 광주 진 출신의 묘연을 만나 함께 여행한다. 조폭의 아내였던 묘연은 집을 도망쳐 나와 쫓기는 상황. 조폭들의 추격을 따돌리며 임종산과 묘연은 흑산도, 홍도, 목포항, 제주도, 해남, 포항, 울릉도까지 해안선을 따라 도피여행을 한다.


소설 곳곳에서 고혹적인 장면을 엿볼 수 있다. 묘연은 임종산과의 첫 만남에서 “선생님, 저 주워가지고 가세요”라며 접근한다. 묘연이 꽃뱀이라고 의심하던 임종산은 아리따운 그의 끈질긴 구애에 “저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돈뿐입니다. 좋은 세월과 함께 젊음은 깡그리 흘러갔고…”라며 마침내 받아들인다. 이들의 제주 우도 데이트의 한 장면은 어떤가. “그가 묘연에게 우리 말 탑시다, 하고 말했다. 그가 말한 ‘우리’라는 말이 그녀의 가슴을 덥게 만들었다. 그녀가 화들짝 웃으며, 좋아요,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런 장면을 상세히 다룬 데 대해 오해를 받지는 않을까. 작가는 “허허. 주변 문인들이 농을 많이 걸겠지요”라며 웃어넘겼다. 그는 ‘소설가 남편 관리를 충실하게 하는 내 순한 아내에게 감사한다’는 인사말을 책에 넣었다.

작품 곳곳엔 아름다운 섬과 항구들을 배경으로 농어회, 자연산 전복, 자리돔물회, 꽃게탕, 가자미회무침 등 각종 별미가 등장한다. 여행 책자로도 손색없을 정도. “한 편의 영화를 찍는다는 생각으로 영상미를 살렸습니다. 책에 소개된 장소들을 답사하며 주인공의 대화를 되짚어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줄 겁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