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禁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도 술 등장 ‘전원일기’ 속 새참 막걸리도 유해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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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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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유해 가사 ‘들쭉날쭉 판정’ 꼬집는 공연 가보니

“흐름과 맥락을 중시하는 예술의 특성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19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카페에서 열린 ‘보드카레인 3집
청소년 유해매체 선정 기념-무해한 심야식당’ 공연을 연 4인조 모던 록밴드 보드카레인.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흐름과 맥락을 중시하는 예술의 특성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19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카페에서 열린 ‘보드카레인 3집 청소년 유해매체 선정 기념-무해한 심야식당’ 공연을 연 4인조 모던 록밴드 보드카레인.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청소년에게 술은 해롭습니다. 그러나 노랫말에 술을 언급해서는 안 된다면 영화나 문학 작품에도 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하지 않나요.”(‘보드카레인’ 보컬 안승준)

19일 오후 9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 카페 ‘커먼’. 30여 평의 카페 안에 놓인 의자 65개가 손님으로 가득 찼다. 의자를 차지하지 못한 40여 명은 뒤쪽에 둘러섰다. 모던 록밴드 보드카레인의 ‘청소년 유해매체 선정기념-무해한 심야식당’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이었다.

보드카레인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노래 ‘심야식당’이 지난달 28일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 고시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여성가족부는 가사 중 ‘한 모금의 맥주’가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본보 10일자 A22면 참조
‘소주’는 되고 ‘한잔’은 안된다? 들쭉날쭉 가요심의

보드카레인 측은 가요의 예술성을 배제한 채 술이 언급된다는 이유만으로 유해 매체물로 분류하는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삐딱한’ 제목의 공연을 마련한 것이다. 청소년 유해물로 지정되면 청소년이 보는 앞에서는 문제의 노래를 부를 수 없다. 하지만 밴드는 문제가 될 만한 노랫말을 걸러 공연하기로 하고, 학생증을 제시한 청소년 38명을 무료로 입장시켰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 중 여럿은 노랫말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음반 심의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고교생 김은지 양(18)은 “가게에 붙어 있는 술 포스터, TV에 나오는 술 광고는 뭐냐”고 반문하면서 “노랫말에 술이 언급된다고 무조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며 금지하는 건 난센스”라고 주장했다. 대학생 정우형 씨(26)는 “(15세 이상 시청가 등급인)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선 주인공들이 꽃술을 나눠 마시고 영혼이 바뀌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 역시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콘텐츠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드라마 속 패륜이나 막장 코드가 (청소년들에게) 더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선혜 씨(32)도 “학창 시절 음악을 들으며 스트레스를 풀었다”면서 “노래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내용을 보고 (유해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시간 20분 남짓한 공연에서 보드카레인은 기존에 발표했던 ‘안녕, 바다’ ‘나의 사춘기’ ‘100퍼센트’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 등을 불렀다.

공연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보컬 안승준이 마이크를 잡고 물었다.

“영화에서 와인 잔을 들고 건배하는 장면이나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새참을 먹으며 막걸리를 마시는 부분이 청소년에게 유해한가요?”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보드카레인은 1970년대 금지곡이었던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노래가 끝난 뒤 보컬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문학과 예술이 다양성 안에서 존중받는 행복한 나라가 됐으면 합니다.”

마지막 앙코르 곡은 문제의 ‘심야식당’이었다. 정부의 심의에 걸린 대목을 어떻게 바꿔 부를지가 이날 행사의 최대 관심사였다. ‘술’을 ‘우유’로 바꿔 부를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지금 내게 간절한 것은 얼음보다 차가운 한 모금의….” 1절, ‘맥주’를 불러야 할 대목에서 보컬은 마이크를 관객 쪽으로 돌렸다. 보컬이 부르지 않고 넘어간 두 음절은 관객들이 대신 큰 목소리로 합창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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