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가난한 예술가의 천국’ 런던이 잠들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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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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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예술단체, 작업공간-전시장 제공 등 지원 시스템 탄탄

①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을 지원하는 스페이스 스튜디오의 본부 건물 ② 테이트 모던에서 유니레버 시리즈의 하나로 전시 중인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 전시장 입구 ③이스트엔드의 화이트채플 갤러리 ④ ‘유망한 젊은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의 실물 사진을 전시한 셀프리지 백화점의 쇼윈도 ⑤스페이스 스튜디오 본부 갤러리 ⑥이기일 작가가 런던 팝의 영감을 얻는 캠든 시장 ⑦이기일 작가 스튜디오 내부에 진열된 LP판들 런던=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사진 제공 LG패션
#1. 아직 성공하지 못한, 말하자면 예술로 명성을 얻지 못한 예술가는 힘겹기 마련이다. 예술이 배부른 직업이었던 적은 많지 않지만, 요즘은 명성에 부(富)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일도 많으니 일단 명성을 얻으면 생계 고민은 덜게 된다.

그렇다고 어느 곳에서나 예술이 ‘똑같이’ 힘겨운 것은 아니다. 힘겨움에도 그 정도가 있기 마련이어서 예술가의 활동 무대가 어디이냐에 따라 ‘더 힘든 곳’과 ‘덜 힘든 곳’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예술 또는 예술가를 위한 지원 시스템이 어떻게 마련돼 있느냐의 차이다.

지원 주체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일 수도 있지만 자발적 자선단체나 기업일 수도 있다. 최근 재정적자 해소를 이유로 문화나 예술에 대한 영국 정부의 지원이 부쩍 줄어들었음에도 여전히 런던이 ‘예술가의 천국’으로 인정받는 것도 이런 시스템 덕이다.

#2. 영국 런던의 스페이스 스튜디오 본부 건물을 찾은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건물 로비의 전시장에서는 마침 고(故)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전시되고 있었다. TV 수상기 속에서 세계를 하나로 묶는 네트워크의 힘을 일찌감치 간파한 작가의 혜안이 여전히 번뜩였다.


스페이스 스튜디오의 책임자인 안나 하딩 씨(사진)가 반갑게 맞았다. 그에게 “1984년 당시 TV를 통해 인상 깊게 본 작품”이라고 인사를 건넸더니 “이런 전시나 예술 지원 활동을 계속하려면 예산이 많이 필요한데 정부 지원이 줄어들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집권한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 정권의 재정적자 감축 계획에 따라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금은 눈에 띄게 줄었다.

정부 지원은 줄었어도 기업과 예술 지원 단체들은 여전히 그들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스페이스 스튜디오는 런던의 예술 지원 단체 중 하나다. 이 단체는 예술 교육, 전시 지원 등을 포함해 다양한 예술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주요 역할은 예술가들에게 ‘작업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방값이 비싼 런던에서 가난한 예술가들이 넓은 작업 공간을 빌리기란 쉽지 않다.

스페이스 스튜디오는 이런 고민에서 출발했다. 1968년 런던의 젊은 예술가들이 주축이 돼 출범한 스페이스 스튜디오는 런던 곳곳의 건물을 사들이거나 빌려 스튜디오를 만든 뒤 싼값에 예술가들에게 빌려주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스튜디오가 모여 있는 건물이나 지역은 자연스럽게 예술가들의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현재 18개 빌딩의 400여 개 스튜디오에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 6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스페이스 본부 건물 한 곳만 해도 70개 스튜디오에서 90명의 예술가가 작업하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를 모아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도 스페이스 스튜디오의 기능 가운데 하나다.

스페이스 스튜디오의 운영비는 예술가들로부터 받는 스튜디오 임대 비용과 예술위원회의 지원금, 각종 개인과 단체의 기부금으로 충당된다. “작가들에게 스튜디오 임대료를 받지만 비싸게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스페이스가 예술가들에게 공간을 빌려주는 것은 일종의 ‘인큐베이팅’ 개념이다. 하딩 씨는 “수십 년 동안 건물을 빌리면서 건물주들과 협상해온 ‘노하우’도 임대료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고 웃었다.

런던=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디자인=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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