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 ‘황남대총 유물 특별전’ 왜 화제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26일 03시 00분


5만2000점 수장고 보는듯…

쓰러뜨려 놓고 뉘어 놓고, 겹치거나 포개어 놓고…. 처음 보면 이건 전시가 아니다. 그러나 다시 보면 문화재 전시의 대변신이다. 경북 경주시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리는 황남대총 유물특별전 ‘신라왕, 왕비와 함께 잠들다’가 세간의 화제다.

황남대총은 경북 경주시 한복판 대릉원에 있는 5세기경의 신라 왕릉. 남북 길이 120m, 높이 22m로 국내에서 가장 큰 고분이다. 1973∼75년 발굴조사에서 금관(국보 191호)과 금제허리띠(국보 192호), 봉수(鳳首) 모양 유리병(국보 193호) 등 국보 4건, 보물 10건을 포함해 5만80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2월 6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에선 황남대총 출토유물 5만8000여 점 가운데 5만2000여 점을 선보인다. 금관과 같은 대표 유물 수십, 수백 점만 전시하던 관행을 깨고 출토유물 90%를 내놓았다. 이렇게 방대한 양의 고분 출토 유물을 전시한 것은 세계 초유의 일.

5만2000여 점을 전시하다 보니 관람객들은 유물의 양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맨 먼저 토기로 가득 채워진 수납장을 만난다. 전시실이 아니라 수장고에 온 느낌이다. 토기 수납장은 전시실 곳곳에 있다.

쇠화살촉 쇠도끼 쇠투겁창과 같은 철기, 토기, 유리구슬, 조개껍데기 등등의 유물은 무더기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수많은 유리구슬이 낱개로 또는 줄에 꿰인 채 더미로 쌓여 있다. 덩이쇠 쇠투겁창 쇠도끼 쇠화살촉 등 각종 철기는 촘촘히 포개어 놓았거나 아예 몇십 개씩 끈으로 묶어 놓았다.

엎어지고 쓰러진 유물도 많다. 국보 금관은 발굴 상태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쓰러뜨려 놓았고 왕의 시신 옆에서 나온 진귀한 유물들은 여러 겹으로 포개어져 나뒹구는 모습으로 전시해 놓았다. 국보 봉수모양 유리병은 청동그릇 유물들 틈에 끼어 있다. 늘 독립된 진열장에서 고고하게 대접받던 국보들이 지극히 평범한 유물과 함께 자리한 것이다. 이처럼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국보급 황금 유물이 아니다. 토기 조각, 화살촉, 조개껍데기 등 5만2000여 점의 유물 하나하나가 전시의 진정한 주인공이다.

소문이 나면서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일본까지 소문이 나 일본 도쿄의 오리엔트박물관 관계자들이 다음 주 전시를 관람할 예정이다. “모든 것을 다 보여주자. 그래야 황남대총의 장대한 규모를 알 수 있다”는 이영훈 경주박물관장의 판단이 적중한 것이다.

경주 시민들 사이에선 신라 고도 경주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었다는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동국대 미술학과의 손연칠 교수는 “전시를 보지 않았으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경주 신라문화의 화려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감동을 이어가기 위해 황남대총 고분 전용 전시관을 만들고 이번 전시처럼 방대한 유물을 그대로 보여주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경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진작가 오세윤 씨는 “경주 시민들이 상당히 고양되어 있다. 1921년 경주에서 처음 금관이 발굴되었을 때 금관을 서울로 보내지 않고 경주에서 지키고 연구하고 전시하자는 캠페인이 있었는데, 그때와 분위기가 비슷한 것 같다”고 전했다. 고분관을 신설해 황남대총과 천마총의 방대한 유물을 교대 전시하자는 의견이다.

신라고분 상설전시실 신설 가능성은 높다. 이영훈 국립경주박물관장은 “박물관 남쪽에 땅을 매입하고 있다. 여기에 수장고와 전시실을 신축하면 이곳을 신라고분관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주=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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