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자’ 3인방이 만든 스릴러 ‘황해’ 내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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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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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돌릴 틈없는 긴장감 팽팽
치밀한 액션 세공품 보는듯

《소문난 잔치. 먹을 것, 넘쳤다.
22일 개봉하는 ‘황해’(18세 이상)는 올해 초부터 기대만큼의 구설에 시달렸다.
중국 옌볜에서 희망 없이 연명하던 택시운전사가 노름빚을 갚기 위해 ‘서울 가서 사람 한 명 죽이고 오라’는 일을 맡으면서 범죄조직 간 아귀다툼에 휘말리는 이야기. 각본과 연출은 나홍진 감독, 택시운전사 ‘구남’ 역은 하정우, 조선족 범죄조직 두목 ‘면가’ 역은 김윤석이 맡았다. 2년 전 507만 명 관객의 흥행과 더불어 대종상 등 각 영화제 주요 부문 상을 휩쓴 ‘추격자’의 멤버들이다. 세 사람이 모여 다시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갈등을 축으로 한 스릴러 영화를 만든 것이다.》

‘추격자’의 감독과 두 배우가 다시 뭉쳐 만든 스릴러 영화 ‘황해’는 박력과 디테일이라는 상이한 미덕이 한 영화 안에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풍성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잠시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배우들은 당연한 듯 고품질 연기를 펼친다. 징그러운 치밀함으로 세공(細工)한 진수성찬이다. 사진 제공 영화인
‘추격자’의 감독과 두 배우가 다시 뭉쳐 만든 스릴러 영화 ‘황해’는 박력과 디테일이라는 상이한 미덕이 한 영화 안에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풍성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잠시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배우들은 당연한 듯 고품질 연기를 펼친다. 징그러운 치밀함으로 세공(細工)한 진수성찬이다. 사진 제공 영화인
“그 밥에 그 나물로 안이하게 전작의 영광을 다시 맛보려는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당연히 뒤따랐다. ‘아저씨’ ‘악마를 보았다’ 등으로 이어진 잔혹범죄물의 유행에 편승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2009년 12월 크랭크인에 지난달 1일 크랭크업. 촬영이 이례적으로 길어지면서 여름에는 “성격 급한 나 감독이 현장에서 스태프와 마찰을 빚어 영화가 엎어졌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20일 언론시사로 처음 드러난 ‘황해’의 실체는 그간의 모든 말을 호사다마(好事多魔)로 일축할 만큼 위력적이다. 각각 ‘택시운전수’ ‘살인자’ ‘조선족’ ‘황해’라는 부제를 단 4개의 장(章)은 교묘한 변주를 이으며 시종 보는 이의 눈과 귀를 놓아주지 않는다. 맡은 일을 하면서 오래전 한국에 가 소식이 끊긴 아내를 찾으려 하는 구남의 사연을 세팅하는 초반 1시간이 먼저 눈 깜박할 새 훌쩍 지나간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거기부터다. 나머지 1시간 36분 내내 이 영화는 어느 찰나도 서두에 구축한 이야기의 탄력에 건성으로 밀려가지 않는다.

열쇠는 과감한 ‘버리기’. 구남이 서울로 오면서 거치는 열차나 밀입국 선박에서의 시퀀스는 달리는 차창 밖 풍경처럼 몇 초 만에 휙휙 눈앞을 스쳐간다.

공들인 디테일로 꽉 찬 영상을 이야기 흐름에 필요한 길이 이상 늘어놓고 자랑하지 않은 것. 별 볼 것 없는 장면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해 짤막짤막 이어내며 괜한 멋을 부리는 ‘빠른 편집’과는 격이 다른 풍성한 공간감이다. 1년에 이른 촬영 기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생략도 과장도 없다. ‘고생해서 찍었다’는 식의 기름진 으스댐을 쫙 뺀 덕에 이야기가 끝까지 팔딱팔딱 요동친다.

종착지는 아내와 딸을 깊이 사랑한, 무능하고 운 없었던 어떤 순박한 사내의 깊고 쓰린 마지막 한숨이다. 주인공 구남은 얼핏 ‘올드 보이’ 오대수에 견줄 만한 깡다구 캐릭터로 보인다. 하지만 만화 원작에 뿌리를 뒀던 오대수와 달리 해학의 대상으로 물러서지 않는다. 감상을 절제한 프레임 속에서 구남은 무뚝뚝한 표정을 한 채 잠시도 외면할 수 없도록 온몸으로 관객에게 자신을 들이댄다.

그런 구남과 냉혹한 면가를 중심으로 엮어지는 이야기는 자연히 더없이 잔인하다. 곳곳에서 난무하는 도끼와 칼부림 아래 스크린 가득 피가 철철 흐른다. 그러나 ‘아저씨’ 같은 패션쇼 식 싸움과 살해 장면은 없다. 개연성이 충분해 이야기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다. 클라이맥스 자동차 추격 신의 실감은 압도적. 할리우드의 ‘다크 나이트’가 자랑했던 트럭 뒤집기 장면의 박력에 뒤지지 않는다.

영화 중반 구남은 “어차피 죽을 것. 하지만 누가 왜 내게 살인을 시켰는지 알아야겠다”고 말한다. 결말에 밝혀지는 사연은 집중력을 잃지 않은 관객이라면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내용이다. 조금은 모호하게 맺은 결말에도 큰 무게를 두지 않고 무심히 놓아버린 듯한 인상을 준다. ‘황해’는 스포일러를 미리 본다 해도 재미없기 힘든 영화다. ‘올해 어떤 영화가 좋았지’라는 질문에 선뜻 답하기 어려웠다면, 서두르길 권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영화 ‘황해’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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