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차 한잔]99점 얼굴에 담긴 고통 그리움 죽음…

동아일보 입력 2010-09-04 03:00수정 2010-09-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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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말하다’ 미술평론가 박영택 씨
박영택 교수는 “얼굴은 그 사람의 성향과 삶의 과정을 대변 하는 이미지”라고 말한다. 사진 제공 박영택 교수
“누군가 나를 기억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얼굴입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얼굴이지만 내 자신을 드러내는 거의 유일한 통로지요. 얼굴은 그 사람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이미지인데 정작 얼굴은 찰나를 담는다는 게 아이러니하지요.”

미술평론가 박영택 경기대 교수(47)는 신간 ‘얼굴이 말하다’에 이종구 오윤 최원석 권순철 양유연 씨 등 한국 미술가 58명의 얼굴 이미지를 이용한 작품 99점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1989년부터 큐레이터로 일해 온 그는 동시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글로 표현해 왔다. 인상 깊게 본 이미지들을 사회적 얼굴, 밥 먹는 얼굴, 추억의 얼굴, 지워진 얼굴, 우는 얼굴, 죽음의 얼굴 등 10개의 소제목으로 분류했고 작품들에 대한 에세이를 썼다. 박 교수는 “얼굴은 사람을 떠올리는 대표 이미지고 작품은 작가를 떠올리는 대표 이미지인데, 작가들이 작품화한 얼굴에 어떤 의미가 있나 궁금했다”고 얼굴을 주제로 잡은 이유를 설명했다.

“얼굴에는 단순한 감정도 떠오르지만 사회나 정치, 현실 문제도 녹아납니다. 순간순간의 이미지들이 축적되고 그 결과로 얼굴에 나타나는 형상을 다각도로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그가 고른 이미지들은 흔히 볼 수 있는 밝게 웃는 아이의 얼굴이나 행복한 미소가 없다. 6·25전쟁 이후 태어난 혼혈아의 얼굴, 기러기 아빠가 홀로 컵라면을 먹을 때의 표정, 눈을 지워 종잡을 수 없는 얼굴 등 전쟁 욕망 폭력 죽음 등 묵직한 주제를 다뤄 어둡고 슬픈 느낌을 주는 것들이다. “기존에는 얼굴 이미지라 하면 으레 여인상이나 자화상을 떠올렸는데 상투적인 것에서 벗어나 살아온 삶의 이력이나 상처를 담은 얼굴을 다루고 싶었어요.”

그는 얼굴 이미지들이 우울한 느낌을 주는 게 우리 사회가 아픔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 예술품이 당대 가치관과 삶의 문제, 고통과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들 얼굴을 들고 다니며 스스로를 드러내고, 또 그 얼굴을 욕망하면서 살지요. 얼굴만큼 삶과 사회를 잘 보여주는 이미지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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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작가들의 작업실을 자주 찾는다. 작가들과 대화를 하고 난 뒤 작품을 보면 더 와 닿기 때문이다. 그는 권순철 작가의 작품 ‘얼굴’을 지목하며 “흡사 누구의 넋 같고, 삶의 에너지를 다 소진한 듯하다”며 “6·25전쟁 때 돌아가신 가족과 이웃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어 풍화된 듯한 느낌의 작품을 만드는 작가의 사연을 알아야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게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지만 작가에게 직접 작품 설명을 듣는 건 지양한다”고 말한다. 작가의 해석을 들으면 자기 식의 작품 풀이와 감상이 어렵기 때문이다.

“작품을 한동안 가만히 들여다봐요. 그런 다음 떠오르는 생각들을 자유롭게 써내려가죠.” 매일 오전 연구실이나 카페에서 작품을 보며 글을 쓰는 박 교수는 ‘이론에 얽매인 딱딱한 미술평론’과 ‘미술 지식을 배제한 채 가볍게 쓴 에세이’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했다.

“미술은 전문가만의 영역도 아니지만 작가와 기법에 대한 설명은 필요하죠. 그래서 미술을 기반으로 해 개인적인 추억도 풀어나가고, 사회 문제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글을 쓰려 했습니다. 작가가 만든 이미지를 ‘해설’하고 ‘생각거리’를 끄집어내는 게 미술평론가인 제 역할이라고 봅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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