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史·哲의 향기]한국의 민족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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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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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민족주의/박찬승 지음/272쪽·1만2000원·소화

민족과 민족주의. 역사학자인 저자는 “이 두 개념이 20세기 한국의 역사를 이끌어 온 동력이었다”고 말한다. 민족과 민족주의라는 개념이 있었기에 독립운동도 가능했고, 국가 건설과 경제 부흥, 그리고 통일에 대한 노력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족은 무엇이고 어느 범위까지 민족으로 봐야 하는가. 이에 대해 명쾌하게 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공통된 전통과 언어, 문학, 관습 등을 갖고 있을 때 민족이라 볼 수도 있고, 혈통을 중심으로 묶어 볼 수도 있다. 단지 정치적 필요에 의해 묶인 공동체일 수도 있다.

이 책은 민족과 민족주의란 용어가 어디서 만들어졌고 무슨 의미로 쓰였는지, 이것이 한국에 들어와 어떻게 적용되면서 변해왔는지 등을 정리했다.

문명이 발달하고 역사가 전개될 때마다 민족과 민족주의는 여러 번 탈바꿈했다. 서구의 시민혁명 이후 19세기에 들어와 자유무역주의를 품은 서유럽의 민족주의는 밖으로 팽창하면서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는 제국주의로 변했다.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을 받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식민지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방어적 민족주의로 이어졌다. 민족과 민족주의가 세계를 격동의 풍랑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일왕이 라디오를 통해 항복을 발표하자 시민들이 서울 도심으로 나와 환호하고 있다. 19세기 말 국권이 위태로울 때부터 일제강점기를 지내는 동안 ‘민족’과 ‘민족주의’는 독립운동을 이끌어나가고 자주 국가를 꿈꾸게 한 원동력이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45년 8월 15일 일왕이 라디오를 통해 항복을 발표하자 시민들이 서울 도심으로 나와 환호하고 있다. 19세기 말 국권이 위태로울 때부터 일제강점기를 지내는 동안 ‘민족’과 ‘민족주의’는 독립운동을 이끌어나가고 자주 국가를 꿈꾸게 한 원동력이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저자는 민족과 민족주의 개념이 태어난 서구에서 눈길을 돌려 한국에서의 민족과 민족주의를 살핀다. 중세 프랑스의 ‘nation(나시옹)’과 독일의 ‘Volk(폴크)’에서 기원한 용어로 1900년대 초 한국에 들어온 민족과 민족주의는 한국의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19세기 말 국가 존망이 위태로워지자 ‘우리는 한민족이다’라는 의식이 생기면서 ‘조선혼’을 지니고 있던 민족을 발견했다. 외래어를 번역한 민족이란 말이 들어오기 전에도 ‘족류’나 ‘동포’라는 용어가 있었다. 1900년대 초기엔 국민이라는 말도 많이 썼다.

국권을 상실한 뒤에는 국권 회복의 주체로 ‘민족’이 강조됐다. 이후 조선은 국제사회의 민족주의 흐름과 맥을 같이했다. 1918년 미국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는 1919년 3·1운동의 근간이 됐다.

광복 이후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민족과 민족주의가 갖는 의미의 변화도 정리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략적으로 민족주의는 강조되기도 했고 억압되기도 했으며 국가주의로 변질되기도 했다.

저자는 5·16군사정변 이후 들어선 박정희 정권이 내세운 민족주의는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개인의 인권이나 자유보다 국가의 경제개발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국가주의적인 것이었고 1972년 단행한 유신은 파시즘 체제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북한은 1970년대 이후 민족은 자본주의 시대의 일시적 현상이라는 마르크스주의의 주장 대신 사회주의적 민족주의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주체사상을 통해서도 민족 자주 의식을 강조하였고, 김일성은 “민족이 있고서야 계급이 있을 수 있으며 민족의 이익이 보장되어야 계급의 이익도 보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화 추세에 따라 민족주의가 낡은 이념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다민족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단일민족론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저자는 이런 여건 속에서 민족과 민족주의가 그동안 변해온 것처럼 어떤 새로운 해석이 나올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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