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소통]예술가와 비예술가 그 경계를 해체하다

  • 동아일보

을지로 스페이스 ‘새로운 적들’전
아르코미술관 ‘기억의 풍경’전

미술계 제도권 밖에 자리한 사람들이 참여한 ‘새로운 적들’전에 선보인 미셸 백 씨의 설치작품. 이번 전시는 예술의 영역에서 적은 늘 내부 구성원이었지만 미래에도 새로운 지평을 보여줄 영웅이 내부에서 나올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고미석 기자
미술계 제도권 밖에 자리한 사람들이 참여한 ‘새로운 적들’전에 선보인 미셸 백 씨의 설치작품. 이번 전시는 예술의 영역에서 적은 늘 내부 구성원이었지만 미래에도 새로운 지평을 보여줄 영웅이 내부에서 나올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고미석 기자
“모든 것이 다 예술이 될 수 있다면 누구나 다 예술가는 될 수 없는 걸까?”

26일까지 서울 중구 을지로 3가 일현미술관 을지로 스페이스(을지재단 빌딩 3층)에서 열리는 ‘새로운 적들’전은 이런 질문을 씨앗으로 기획됐다. 이현아 성아리 신민경 씨 등 20대 작가 3명은 작곡가와 VJ 등 미술계 울타리 밖에서 활동하는 6명을 섭외한 뒤 3개월여간 작품 구상부터 제작을 도왔다. 그 결과를 보고하는 전시에선 아마추어의 개성이 듬뿍 녹아든 설치, 영상, 드로잉을 볼 수 있다. 작품 외형만으로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하기 힘든 동시대 미술의 풍경을 살짝 꼬집으며 예술과 비예술을 가르는 기준을 생각해본다. 02-2266-3131

전통적 시스템을 성찰하게 하는 또 다른 전시가 있다.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27일까지 열리는 ‘기억의 풍경’전. 아르코와 디자인연구소 ‘프리그램’이 공동기획한 전시의 핵심에 일반 시민이 자리 잡고 있다. 한 테마로 물건을 모아온 수집가의 애장품과 이야기를 족자 형태의 배너로 소개하면서 이를 일상의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자발적 미술행위’로 조명한 전시다. 02-760-4606

제도권 밖 작품이나 ‘행위’도 현대미술로 수용할 수 있을까. 비전문가를 초대한 이들 전시는 근원적 질문을 제기하며 예술의 완고한 울타리를 뛰어넘어 소통의 폭을 넓히려는 도전을 시도한다.

○ 작가와 아마추어의 경계

‘새로운 적들’전은 예술에서 기존의 틀을 무너뜨린 적은 늘 내부 구성원이었으나 미래에도 그것이 가능한지 자문한다. “모든 방향으로의 표현이 열린 당대 미술의 다양성 안에서 새로운 지평을 보여줄 새 영웅이 내부에서 나올 것이라는 바람은 과연 유효한 것인가? 또 모든 것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부인의 예술은 냉대를 받고, 깊이 있는 작품으로의 진입을 애초에 차단당하고 있지 않은가.”(전시서문)

전시는 오피스 빌딩 3층에 자리한 6개의 사무실과 복도에서 펼쳐진다. 20∼30대 초반의 전시 참여자들은 수준 있는 결실을 내놓았다. 의대 졸업 후 인터넷 학습사이트 대표를 지낸 이광복 씨는 문을 열면 주식방송에 따라 실시간 주가 변동을 레이저로 그려내는 설치작품을, ‘텔레파시’밴드 VJ 박유석 씨는 디지털 드로잉과 사운드 작업을, 건축가 김형석 씨는 바닥과 벽에 테이프 설치작품을, 작곡가 이은지 씨는 소리를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공간을, 출판 편집자 최윤석 씨는 자기 공간을 입체화한 드로잉을 내놓았다. 독일 태생으로 한국에 머물고 있는 미셸 백 씨는 텅 빈 공간에 매트리스 없는 침대와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한 흔적을 남겼다.

‘기억의 풍경’전은 보통 사람들의 ‘수집’과 수집에 대한 이야기를 전시장으로 끌어들였다. 다양한 물건을 모으는 수집가들의 애장품을 족자 형태의 배너로 전시하면서 수집의 의미를 개인적 취미를 넘어서는 사회적 예술적 관점으로 해석한다. 고미석 기자
‘기억의 풍경’전은 보통 사람들의 ‘수집’과 수집에 대한 이야기를 전시장으로 끌어들였다. 다양한 물건을 모으는 수집가들의 애장품을 족자 형태의 배너로 전시하면서 수집의 의미를 개인적 취미를 넘어서는 사회적 예술적 관점으로 해석한다. 고미석 기자
기획자들은 아마추어의 작업을 돕는 과정에서 배운 것이 많다. “작품은 세련되고 난해해야 하고 다 들키면 재미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들은 다 밝히려고 했다.” “내가 관객이 되는 상황의 역전에서 깨달은 점이 많다.” “경계의 해체를 내세우며 모든 것을 예술로 포용하지만 예술가의 인증과 평가에 있어 제도권의 주관성이 존재하는 현실을 돌아보았다.”

○ 작가와 아마추어의 공존

‘기억의 풍경’전은 미술관의 보수적 공간에서 일반의 ‘작품’을 선보인 색다른 기획이다. 수집품 이미지와 이야기를 담은 배너가 늘어선 1층 전시실이 인상적이다. 미니카, 병따개, 냉장고 자석, 팝업북 등을 모으는 수집가의 사연, ‘집적’을 키워드로 삼은 작가들의 작품 이미지가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 80여 명의 이야기가 하나의 풍경으로 어우러진 전시는 수집가 내면에 자리한 사적 기억을 공적 공간으로 불러낸다. 2층에선 안세은 김윤호 한정림 윤정미 씨 등 작가의 작품과 실물 수집품을 나란히 전시했다.

미술관을 나오면 공사용 폐자재를 쌓은 최정화 씨의 설치작품과 마주친다. 예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 전시를 보고 나니 작가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가치가 있고, 없고/보기 좋고, 나쁘고/의미 있고, 없고/예술이고, 아니고/쓸모 있고, 없고/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 옳은 것들일까/이미 되어있는 것들은 굳건할까?/글쎄, 질문해 봅시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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