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더 큰 옷장을 안고 그녀들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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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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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 많아진 ‘섹스 앤드 더 시티2’

영화 ‘섹스 앤드 더 시티2’의 진짜 주인공은 ‘패션’이다. 온갖 패션 브랜드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간접광고는 “광고보다 더 직접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왼쪽부터 샤넬 목걸이로 멋을 낸 샤를롯, 할스턴 드레스를 입은 캐리, 키스 해링 포 하우스 오브 필드 드레스를 뽐낸 사만사, 마라 호프먼 드레스와 로베르토 카발리 팔찌로 스타일링한 미란다. 사진 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영화 ‘섹스 앤드 더 시티2’의 진짜 주인공은 ‘패션’이다. 온갖 패션 브랜드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간접광고는 “광고보다 더 직접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왼쪽부터 샤넬 목걸이로 멋을 낸 샤를롯, 할스턴 드레스를 입은 캐리, 키스 해링 포 하우스 오브 필드 드레스를 뽐낸 사만사, 마라 호프먼 드레스와 로베르토 카발리 팔찌로 스타일링한 미란다. 사진 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그래, 나 섹스하는 여자야!”

지난달 28일 열린 영화 ‘섹스 앤드 더시티2’ 시사회장. 사만사(킴 캐트럴·54)의 외침에 여성관객들이 박장대소했다. 에르메스 버킨백에서 떨어진 콘돔 탓에 아랍 남성들로부터 봉변을 당할 위기에 처한 사만사는 오히려 당당했다.

여성 관객들을 또다시 술렁이게 한 장면은 주인공 캐리(세라 제시카 파커·45)의 옷장이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엄청난 크기의 드레스룸은 ‘에덴동산’이요, 그 속을 가득 채운 ‘신상(신제품)’들은 여성을 유혹하는 ‘금단의 열매’였다.

1998년부터 6년간 6개 시즌의 드라마로 제작되고, 2008년에 이어 올해 영화판으로 나온 ‘섹스 앤드 더 시티’는 패션과 섹스에 대한 여성의 욕망을 날실과 씨실 삼아 은밀하게 교직한 작품이다. 그리고 10일 개봉 예정인 두 번째 영화에서도 패션은 눈요깃거리가 아니라 주제로 당당히 부상했다.

세라 제시카 파커는 할스톤 헤리티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다. 영화에서 이 브랜드의 드레스를 자주 입고 등장하는데 사진속의 화이트 드레스는 할스톤의 빈티지 제품이다(위).발렌티노 드레스에 컵케이크 모양의 앞치마를 두른 샤를롯(아래).
세라 제시카 파커는 할스톤 헤리티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다. 영화에서 이 브랜드의 드레스를 자주 입고 등장하는데 사진속의 화이트 드레스는 할스톤의 빈티지 제품이다(위).발렌티노 드레스에 컵케이크 모양의 앞치마를 두른 샤를롯(아래).
○ 할스턴 드레스, 디오르 턱시도…노골적인 간접광고

주인공 캐리는 이번 영화에서 모두 42개의 토털룩을 선보인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아이템은 오프닝 장면에 등장하는 할스턴의 빈티지 드레스. 샤넬 클러치백과 크리스티앙 루부탱의 하이힐, 19만8200달러(약 2억4000만 원)짜리 솔란지 에즈거리 파트리지 목걸이와 스타일링한 이 화이트 드레스는 영화 포스터에까지 등장했다. 파커는 영화에서 유독 할스턴의 드레스를 편애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공항에 도착할 때 입은 원숄더 핑크 드레스, 홀로 바닷가를 거닐던 장면에서 입은 오렌지색 드레스 등이 이 브랜드의 빈티지 또는 세컨드 라인인 할스턴 헤리티지 제품이다.

이는 파커가 올 초 할스턴 헤리티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대표로 영입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파커가 이 브랜드에 직접 투자 방식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을 소개하며 “광고보다 더 노골적인 광고”라고 혹평했다.

캐리의 패션은 원래 빈티지와 명품, 중저가 아이템을 적절히 섞는 믹스&매치가 핵심이었다. 낮은 인지도 탓에 양말 한 짝 협찬 받기 어려웠다는 드라마 방영 초기, 뉴욕을 샅샅이 뒤져 찾아낸 빈티지 아이템을 적극 활용한 스타일리스트 퍼트리샤 필드의 전략 덕분이다. 하지만 ‘섹스 앤드 더 시티’가 세계적인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 잡자 대형 명품 브랜드의 간접광고(PPL) 마케팅이 본격화됐고, 주인공 캐리의 스타일도 럭셔리룩으로 변모했다.

스타일리스트 박명선 실장은 “하나의 룩을 완성하기 위해 적어도 5개의 패션 아이템을 매치했던 드라마와 달리 영화에서는 제품이 돋보이도록 2개 이상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았다”며 “마치 광고 카탈로그를 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특히 주인공들이 사막 위에 한가롭게 앉아 대화를 즐기는 대목에서는 마치 잡지 화보를 보는 듯 의도적인 미장센이 연출됐다. 할스턴 핑크 드레스를 입은 캐리 옆에 보란 듯이 배치된 마놀로 블라닉 슈즈, 샤를롯(크리스틴 데이비스·45)의 빈티지 레드 드레스보다 눈에 띄게 스타일링된 샤넬 목걸이, 절묘한 각도로 자리 잡은 크리스티앙 루부탱 슈즈 등이 상업적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할스턴과 함께 이 영화로 적지 않은 광고 효과를 볼 브랜드는 디오르다. 캐리는 게이 친구의 결혼식에서 이 브랜드의 턱시도를, 옛 남자친구와의 재회 장면에서 ‘난 디오르를 사랑해(J'adore Dior)’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었다. 드라마(시즌3)에서 입었던 드레스를 영화에서 또다시 입는 이례적인 스타일링도 연출하는데, 그 역시 존 갈리아노가 디자인한 디오르의 신문 프린트 드레스였다. 캐리가 유독 자주 걸고 나온 차한(Chahan)의 네잎클로버 목걸이도 유행 예감 아이템. 오리지널 제품의 가격은 2만 달러(약 2400만 원)다.

이번 영화에서 일취월장의 패션 감각을 선보인 캐릭터는 미란다(신시아 닉슨·44)다. 스타일리스트 필드는 “시즌 초반에만 해도 ‘난 패션에 취미가 없다’고 못 박았던 신시아가 감각을 키우면서 훨씬 더 다채로운 패션을 소화하게 됐다”고 평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우아한 멋이 나는 에르메스 화이트 롱드레스를 걸친 그녀에게서 촌스러운 변호사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램 블랙의 드레스와 누아르 귀고리로 스타일링한 사만사(위). 촌티나는 변호사 이미지에서 탈피한 미란다의 줄리엔 맥도널드 드레스(아래).
그램 블랙의 드레스와 누아르 귀고리로 스타일링한 사만사(위). 촌티나는 변호사 이미지에서 탈피한 미란다의 줄리엔 맥도널드 드레스(아래).
○ ‘섹스 앤드 더 시티’가 남긴 것

12년간 인기를 누린 ‘섹스 앤드 더 시티’가 패션에 끼친 영향은 무엇일까. 패션정보회사 PFIN 조길우 연구원은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생소했던 ‘믹스&매치’ 스타일을 대중화시키고, 구두에 집착하는 슈어홀릭 붐을 일으킨 것을 꼽았다.

패션컨설턴트 심우찬 씨는 “옷의 목적이 ‘입는 것’이 아니라 ‘벗는 것’일 수도 있음을 증명하면서 패션을 통해 성적 매력을 어필하려는 여성의 본능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영화에서 패션만큼이나 뚜렷하게 나타난 시각적 변화는 멋쟁이 주인공들도 피해갈 수 없는 노화의 흔적이다. 쪼글쪼글한 입매가 안타까웠던 파커를 비롯해 검버섯까지 드리워진 캐트럴의 손등, 눈가 주름이 도드라진 데이비스와 닉슨의 모습은 나이와 반비례해 빛나는 패션의 잔인한 속성을 절감하게 했다.

영화 속에서조차 이들의 ‘나이듦’은 황당한 에피소드로 희화화된다. 17세의 아이돌 스타 마일리 사이러스와 우연히 똑같은 매슈 윌리엄슨 미니 드레스를 입고 공식석상에 나선 사만사는 기자들로부터 “마일리의 엄마냐”는 질문을 받는 굴욕을 겪는다. 시사회장을 찾은 패션 전문가들도 “안타깝지만 나잇살이 찐 캐트럴과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사이러스의 몸매는 미학적으로 큰 차이가 났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다면 패션은 안티 페미니즘적인 걸까. 분명한 것은 여성에게 섹스와 패션은 모두 판타지를 추구하게 한다는 점이다. 집안에서도 랑방의 값비싼 롱드레스를 질질 끌고 다니고, 폐경기증후근에 시달리면서 20대 미식축구 선수들의 은밀한 부위에 관심을 갖는 주인공들의 ‘섹스 앤드 더 시티’는, 그래서 여자들을 빠져들게 하는 여성판 판타지 영화인 것이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 위 기사의 풀버전은 동아닷컴 오감만족 O₂에서 볼 수 있습니다.
▶ [O2/커버스토리]패션보다 화려하고, 섹스보다 달콤한…‘섹스앤더시티2’ 스타일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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