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 고양이’는 2001년 인터넷소설로 인기를 얻은 뒤 2003년 고 정다빈, 김래원 주연의 TV드라마로 제작돼 40%대의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이다. 좁은 옥탑방에서 얼떨결에 동거하게 된 청춘남녀가 알콩달콩 다투다 진짜 사랑을 이뤄간다는 내용이다.이를 연극화한 ‘옥탑방 고양이’(박은혜 작, 김태형 연출)는 영상매체로 제작된 작품을 무대화할 때 무엇에 주력해야하는지를 얄밉도록 잘 보여준다.
첫째는 무대세트다. 영상은 공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반면 공연은 무대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진다. 따라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공간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 연극에선 모든 사건이 서울 종로구 창신동 한 다세대 주택 옥상위에서 펼쳐진다. 이를 위해 방송에선 광고회사를 다니며 다양한 인물과 만나는 여주인공 남정은은 주로 집에서 노트북으로 대본을 쓰는 방송작가 지망생으로 바뀐다. 방송에서 고시생이었다가 사법연수원생이 되는 남자주인공 이경민도 ‘사랑의 집짓기’ 자원봉사자로 활동영역이 좁혀진다.
그렇다고 무대세트가 단순한 배경에만 머물러선 곤란하다. 영상매체의 화려한 영상미에 필적할 무대미학을 보여 줘야한다. 연극에서 옥탑방이 그런 역할을 수행한다. 연극이 시작되고 한참동안 옥탑방은 옥상 구석의 ‘초소’정도의 역할만 수행한다. 그러다 옥탑방의 주거권을 놓고 다투던 남녀주인공이 합방에 합의하자 좌우로 벽이 펼쳐지면서 온갖 살림살이가 들어선 어엿한 주거공간으로 바뀐다. 감탄할만한 변신이다.
셋째 관객에게 익숙한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다채로운 변주를 들려줘야한다. 이경민 역으로 보조개, 눈웃음, 건강미를 앞세운 이선호, 성두섭, 김동호 씨를, 나정은 역으로 엉뚱함, 귀여움, 상큼함으로 무장한 황보라, 손수정, 김여진 씨를 발탁해 차별화한 캐릭터 배합을 펼친다. 원작에도 없는 ‘날’(김나미, 황선화)과 ‘뚱’(이명행, 조현식)이라는 도둑고양이 한 쌍을 등장시켜 무대와 객석의 심리적 간격을 좁힌 극적 장치도 연극적 묘미를 한껏 살렸다. 고양이와 사람을 오가며 순발력 넘치는 연기를 펼치는 이들 멀티맨 배우들은 공연이 끝난 뒤 주연배우들 못지않은 박수갈채를 받는다. 정은과 경민이 어색하고 불편한 ‘룸메이트’에서 애틋하고 진정한 ‘소울메이트’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진정한 매력을 발견하는 변곡점을 설득력있게 보여줄 극적 장치가 부족한 점은 아쉽다. 3만원. 5월30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SM틴틴홀. 02-501-7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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