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연주 중 지휘자를 보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13일 15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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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보러 갔는데, 단원들이 악보만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지휘자는 쳐다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DVD로 본 오케스트라 연습 장면에서도 지휘자가 중단 신호를 보냈는데 몇 초 동안 연주를 계속하는 연주자들이 있었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연주 중 정말로 지휘자를 보나요? (성준기·33·서울 잠원동)

인간의 시력에는 '중심시력'과 '주변시력(시야)'이 있습니다. 미세한 사물을 구별하거나 글씨를 읽는 것은 중심시력의 몫입니다. 그렇지만 사물의 움직임이나 빛의 변화는 주변시력으로도 충분히 포착할 수 있습니다. 운전자가 내비게이션을 들여다보면서도 다른 차에 부딪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오케스트라 연주자는 악보를 읽으면서 지휘자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운전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적응이 필요해서, 합주에 처음 참여하는 연주자는 악보를 읽으면서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가기 힘이 든다고 합니다.

개인차도 있어서 실제로 지휘자를 잘 안 보는 연주자도 있습니다. 광주시향 상임지휘자인 구자범 씨가 한 일본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 일인데요, 오보에 연주자가 자신의 비트에 정확히 반응하지 않아 그 연주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더니 그가 먼저 일어나 고개 숙여 미안함을 표시하더랍니다. 지휘자를 보지 않았음을 고백한 거죠.

말씀하셨듯이 일류 오케스트라의 연습 때도 지휘자가 중단 신호를 보냈는데 계속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있습니다. 연주자들은 특히 현악기나 목관악기가 빠른 악구를 연주할 경우 몇 마디씩을 한 묶음으로 인지하기 때문에 그 묶음 속에서 연주를 중단하기 힘이 든다고 합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지휘과 교수인 정치용 창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는 이 때문에 지휘 교습을 할 때 "가급적 여러 악기가 동시에 쉬는 부분에서 중지 신호를 내려라"고 가르친다고 말했습니다.

한 가지 더. 오케스트라 연주 때 연주자들은 지휘자의 움직임 뿐 아니라 동료 연주자들의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특히 현악기 연주자들은 활을 사용해 몸 움직임이 크고 자기 파트 내에서의 합주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기 파트 연주자들의 움직임을 항상 눈여겨봅니다. 2009년 BBC 아마추어 지휘자 선발대회인 '마에스트로'에서 심사위원을 맡았던 지휘자 로저 노링턴 경은 "합창단이 포함된 관현악곡을 지휘하는 것은 오케스트라만 지휘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합창단은 옆 사람의 움직임에서 정보를 파악할 수 없어 지휘에 대한 반응이 오케스트라와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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