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10]시나리오 ‘산사일기’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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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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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박자박 용맹정진 2년짜리 번뇌

최영주 씨
최영주 씨
내 유년의 기억 속에 까까머리에 볼 빨갛던 막내 이모 친구 김행자 님이 있었다. 어른들이 수군거리는 말로는 연애에 실망해서 절로 들어갔다던 그분은 가끔 탁발 나온 길에 친구인 막내 이모를 만나고 가곤 했다. 그분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은 묘한 미소 때문이었다.

분명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울 것처럼 그렁그렁 젖어있던. 그때는 그 슬픈 미소의 의미를 짐작도 못했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행자복에 가려진 어깨에 업장이 그렇게 힘겨웠던 것이리라. 속세의 티끌 다 버리려고 절에 들어가서는 속세에 연연하는 수행자라니. 불심이 깊은 것도 불연이 깊은 것도 아니기에 속가의 인연에 연연하는 그 슬픈 미소. 큰스님들이 들으시면 끌탕을 할 일이지만 내게는 왠지 그 연연함이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다 잊고 잔걸음이나 자박자박 스님의 길로 가신 그분. 몇 년 전 신록이 우거진 날 청도 운문사를 다녀오고 난 후 까까머리에 볼 빨갛던 김행자 님이 생각나서 글로 한 번 남겨볼까 했는데 집안의 세 남자들(남편과 두 아들)과 싸우며 살다보니 탈고에만 2년이 넘게 걸렸다. 내 2년짜리 번뇌를 알아봐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고 기회를 주신 동아일보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지금쯤 깊은 산사에서 초로의 비구니가 되어 있을 김행자 님께도.

최영주 씨
△1969 부산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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