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인간은 비만을 향해 진화해가나

  • 동아일보

달고 고소하고 살찌는 음식이 지배
‘비만은 유전?’ 핑계로 과식 합리화

◇세계는 뚱뚱하다/배리 팝킨 지음·신현승 옮김/264쪽·1만4000원·시공사

16억 명. 현재 전 세계에서 과체중과 비만 상태인 사람들의 수다. 1950년대에는 그 수가 1억 명을 넘지 않았다. 살찐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당뇨와 고혈압 같은 ‘비만병’도 뒤따라 증가했다.

영양학자인 저자는 이 같은 현상을 세계화로 인한 식단의 변화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평평한(Flat) 세계’가 ‘뚱뚱한(Fat) 세계’를 낳은 셈이다. 이 책은 미국, 인도, 중국, 러시아, 필리핀, 브라질 등 세계 곳곳의 가정을 직접 관찰해 전 세계적인 비만인구 증가의 원인을 살핀다.

세자르 씨와 안나 가르시아 씨는 1985년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 집에서 직접 만든 토르티야를 먹으며 자랐다. 이주 초기에도 주로 쌀, 콩, 토르티야를 먹었다. 차츰 수입이 늘고 아이들이 TV에 나온 음식을 먹고 싶다고 조르면서 식단이 변했다. 물 대신 청량음료나 맥주를 마시고 피자 같은 패스트푸드가 아이들의 점심식사가 됐다. 토르티야는 월마트에서 사서 먹는다.

대형 할인점의 토르티야는 값싼 미국산 옥수수 가루로 만든다. 전통 토르티야의 영양분은 대부분 빠져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 미국은 물론 멕시코 현지에서도 주로 미국산 옥수수로 만든 토르티야를 먹는다.

세계화는 정제되고 단 음식, 고칼로리 식단으로 사람들의 식생활을 변화시켰다. 대표적인 예로 식물성 기름의 사용량이 크게 증가했다. 콩, 해바라기, 땅콩 등 지방이 많은 종자를 대량 재배해 싼값에 거래하면서 세계적으로 구이나 튀김에 드는 비용이 급격히 하락했다. 설탕도 마찬가지다. 물 대신 당분을 가득 넣은 음료수를 마신다. 패스트푸드처럼 대부분 음식이 저렴할수록 더 기름지고, 더 달다.

사람들의 평소 운동량은 줄어들었다. 1970년대 필리핀 가정의 음식 준비 시간은 하루 평균 2시간이었지만 최근 20∼40분으로 줄었다. 믹서나 푸드프로세서 같이 편리한 도구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냉동식품이나 미리 조리된 식품을 많이 먹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제생명과학회는 식품안전과 약물중독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는 식품산업 기업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비만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운동을 유독 강조한다. 설탕을 넣은 음료를 덜 마시는 칼로리 줄이기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교묘하게 피해간다. 또 ‘비만은 유전자 때문’이라는 주장 역시 칼로리 과다 섭취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있다.

책에는 한국이 두 차례 등장한다. 저자는 “채식 위주의 한국은 비슷한 경제규모의 국가들보다 비만인구가 훨씬 적지만 자유무역에 동참하고 서구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비만인구가 점점 늘고 있다”고 평가한다. 한국 역시 ‘뚱뚱한 세계화’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자르 씨는 현재 당뇨병에 걸려 고통 받고 있다. 자녀들 역시 뚱뚱한 편이다. 저자는 “나쁜 식습관에도 불구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약물을 복용하는 부자들의 세계”와 “피둥피둥 살이 찌면서 심각한 건강 이상을 겪는 가난한 자들의 세계”로 분열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학교에서 청량음료나 패스트푸드 금지하기, 건강에 해로운 음식에 세금 부과하기 등이 저자가 제시하는 뚱뚱한 세계의 ‘다이어트 방법’이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비만 문제는 세계화로 인한 식단 변화에서 비롯했다. 저자는 “비만을 몰고 온 식습관을 반전시키지 못하면 수천 년 뒤에는 단 음식을 멀리하고 육체 활동을 선호하는 사람들만 생존할 것”이라고 말한다. 일러스트 제공 시공사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비만 문제는 세계화로 인한 식단 변화에서 비롯했다. 저자는 “비만을 몰고 온 식습관을 반전시키지 못하면 수천 년 뒤에는 단 음식을 멀리하고 육체 활동을 선호하는 사람들만 생존할 것”이라고 말한다. 일러스트 제공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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