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책]시골 할머니집 맡겨진 구박덩이 일곱살 소녀, 더불어 사는 삶 배우다

  • 입력 2009년 8월 29일 02시 59분


◇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김숨 지음/238쪽·9000원·문학과지성사

아버지의 등짝에 거머리처럼 매달려 도착한 시골마을. 하지만 흙먼지 바람에 날리듯 아버지는 금방 사라져버리고 일곱 살짜리 동화는 할머니 집에 얹혀살게 된다. 서울에 아파트 지으러 갔다는 아버지는 ‘백 밤’이 지나야 동화를 데리러 다시 온다고 한다. 하지만 동화는 백 밤이 얼마나 많은 날인지 도무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막연한 그날을 기다리며 동화는 충남 금산군 추부면 사람들과 어울리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마늘을 까게 하는 할머니, “천년만년 재수 없다”를 연발하며 껌을 짝짝 씹는 춘자 고모, 믿기지 않는 거짓말을 줄줄 풀어놓는 입심에다 개미까지 먹을 줄 아는 옥천 할마 등과 부대끼면서 말이다.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은 소설가 김숨 씨가 펴낸 첫 성장소설이다. 탄탄한 서사와 강렬한 상징 등은 그대로지만 불구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 시적인 문체로 독특한 가족 서사를 그려온 전작들과 비교하면 이번 성장소설은 훨씬 서정적이고 편하게 읽힌다.

엄마가 집을 나가면서 시골에 맡겨진 동화는 할머니에게도 고모에게도 구박덩이다. 할아버지는 몸져누워 있다. 낯설고 어색한 마을. 그곳에서 아이는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간질을 앓으면서도 형의 담배농사를 지어야 하는 장대 아저씨를 만나고, 기계에 팔이 잘린 방앗간 할머니, 열여덟에 아이를 가지게 된 정희 언니도 알게 된다.

상처와 부채를 묵묵히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소설이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결함과 허점투성이인 마을을 헤집고 다니는 호기심 많고 순수한 어린 소녀의 행동거지는 번번이 웃음을 자아낸다.

동화는 이곳에 머물면서 사람들이 서로 상처를 주면서도 제 몫의 아픔을 참고 견디고, 마음으로 의지하면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배워간다.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지만, 그래도 아름답다는 것. 마치 소설 속에 인용되는 칼릴 지브란의 글귀처럼 말이다.

“그대들은 결코 더러운 자와 깨끗한 자를, 악한 자와 선한 자를 나눌 수 없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마치 검은 실과 흰 실이 함께 짜이듯이 태양의 얼굴 앞에 함께 서 있으므로.”

시골의 조부모 댁에 맡겨진 일곱 살짜리 아이가 열여섯 소녀가 되어 마을을 떠날 때까지의 성장기는 애잔하면서도 뭉클한 여운을 남긴다. 김 씨는 ‘작가의 말’에서 “이 세상 어디에선가 ‘아름다운 죄인들의 얼굴’을 품고 살아가고 있을 그 여자아이…이 소설이 그런 이에게 위안과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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