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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8월 2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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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의 쇠퇴/오마에 겐이치 지음·양영철 옮김/364쪽·1만5000원·말글빛냄
고대 도서관부터 근대 연구소까지
지식 혁명의 공간 연대기식 서술
현대는 인터넷기반 집단지능 시대
좁고 얕은 시야 사고력 저하 우려도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글쓰기에 대한 경멸이 그것이다. 문답법을 통해 진실을 탐구한 그는 문자는 말과 달리 글 쓴 사람의 성격이나 명예심, 행동 등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불신과 왜곡이 일어나는 매체라고 여겼다.
아테네 광장 시대의 지식은 경쟁적인 말하기 형식을 취하고 있었고 글쓰기는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던 인류 지식의 역사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건립된 기원전 3세기에 큰 전환을 맞는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필사와 편집, 재구성, 주석과 해석을 붙이는 작업을 통해 고대의 지적 유산을 지중해 연안에 널리 퍼뜨렸다. 그리스의 구술(口述) 문화를 성문(成文) 문화로 바꿈으로써 고대의 지적 전통을 휴대 가능한 유산으로 변모시켰다.
인류사에 있어 지식이 어떻게 발전 변화해 왔고 또 인터넷시대에 이르러 지식이 어떤 위기에 처했는지를 살펴본 두 권의 책이 나왔다.
저자들은 최초의 지식 집대성 기관인 도서관의 시대를 기원전 300년∼기원후 500년으로 잡았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통해 대조, 번역, 종합이라는 학문의 형식이 최초로 확립됐다. 주석, 소사전, 도서목록, 색인 등이 처음 등장한 것도 이때다.
로마제국 붕괴 후 세상과 동떨어져 있던 수도원은 서기 100∼1100년 핵심적인 지식 기관의 역할을 했다. 수도원은 문명이 붕괴를 거듭하는 수세기 동안 학문을 보존하고 연구했다. 부활절을 정확히 계산하려는 노력에서 발달된 역법과 수학은 음악과 항해학, 기후학, 농학, 의학 등 다양한 학문의 토대가 됐다.
1100∼1500년은 대학이 지식의 중추기관으로 활동한 시대다. 수도원이 지식을 지배하던 세상에서 대학의 시대로 바뀐 것은 12세기 유럽의 경제 부흥과 관련이 깊다. 상업이 흥하고 인구가 급증하면서 지식을 좇아 많은 젊은이가 도시로 몰렸기 때문. 볼로냐가 법학, 파리가 신학, 프라하가 인문학으로 유명해진 것도 이 시기다. 대학의 시대에는 학부와 전공이 세분되고, 커리큘럼과 학위 제도 등이 새롭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저자들은 1500∼1800년에는 편지를 중심으로 서신 교환 네트워크가, 1700∼1900년에는 전문학교가, 1770∼1970년에는 연구소가 새로운 지식 창출의 중심 역할을 했다고 강조한다. 전문학교는 분업이 숙련도를 향상시키고 시간을 절약한다는 인식 아래 지식 분야에서도 전문화가 진행되면서 생겨났다. 교육을 열망하는 대중에게 다양한 전문 지식을 전달함으로써 전문학교는 계몽의 꿈을 이뤘다고 저자들은 평가한다.
연구소의 시대에 이르면 실험과학의 발전과 함께 객관성과 보편성을 추구했다. 미생물 연구를 통해 우리의 가정환경을 개선한 파스퇴르처럼 연구소의 비범한 과학자들은 인류의 지식 지형도를 크게 변화시켰다. 저자들은 “이 같은 지식의 혁명과 변천사는 오늘날 인터넷이 초래한 지식 혁명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지식의 재탄생’이 1970년대까지 지식의 진화와 발전을 논했다면 ‘지식의 쇠퇴’는 최근 인터넷시대 지식의 위기를 경고한다. 일본의 대표적 경영컨설턴트인 저자는 우선 인터넷시대를 집단지능(집단적 지성, 집합지능)의 시대로 정의한다. 집단지능은 우수한 인물이 개인적으로 창출하는 지식보다 뛰어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집단지능이 잘 형성된 국가일수록 글로벌 경제에서 번영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이어 저자는 집단지능의 시대에 오히려 좁은 시야로 인해 지식의 쇠퇴가 일어나고 있는 일본의 실태를 지적한다. 정보화 사회로의 급속한 이동으로 휴대전화나 인터넷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지면서 젊은이들에게 사고력이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저하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집단지성론에 대한 전망은 우리에게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앞으로는 집단지능으로 형성된 ‘새로운 교양’에 의해 세계가 발전할 것이다. 거기에 참여할 수 없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