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문학, 장르를 박차다]<10·끝>소설가 정한아 씨

  • 입력 2009년 8월 24일 02시 50분


“20대 전업작가? 지금은 수련중”

소설가 정한아 씨(27)에게 전화를 걸자 “인터뷰 시간은 저녁 무렵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를 만나고서야 이유를 알게 됐다. 오후 7시경에 작업실에서 ‘퇴근’하기 때문이다. 2006년 건국대 국문과 재학 중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등단한 정 씨는 대학 졸업 후 곧장 전업작가의 길을 택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작업실에 머문다. “직장인들과 똑같은 출퇴근시간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퇴근 이후 시간도 평범한 직장인들과 비슷하다. 운동을 하거나 약속을 잡는다. 인터뷰 당일에도 퇴근 후 요가까지 마친 뒤였다.

작업실은 2007년부터 쓰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삼대가 북적이며 사는 집에서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란다. 일의 긴장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래도 작업실을 얻는다는 건 많은 작가들의 꿈이다. 젊은 나이에 방 두 칸이 있는 작업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해 출간한 장편 ‘달의 바다’의 영화 판권 계약 덕분이었다. 그 뒤 단편집 ‘나를 위해 웃다’를 펴냈다. 노원구에 있던 작업실은 얼마 전 성북구 종암동 집 부근으로 옮겼다.

그의 작품은 장르적인 요소를 반영하거나 실험적인 시도를 하기보다 전통적인 서사에 충실한 편이다. 스스로도 “젊은 작가들이 판타지나 SF 등의 상상력을 반영해 소설을 쓰는 걸 보면 부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다루는 소재가 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순진무구하고 명랑한 감수성과 산뜻한 문체는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을 빚어내기도 한다. 그런 점이 일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취업 장수생이든 쇠락한 집창촌 사람들이든, 그의 소설에서 출구 없는 암담함이나 비정함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모든 인간이 상처를 가지고 있는 법인데 어떻게 상처를 대하는 게 이기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며 “그런 상황에서 정말로 이기는 것, 품위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나름의 답이 드러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그의 소설처럼 실제 작가의 성격도 명랑하고 밝다. ‘작품을 어떻게 쓰고 있느냐’는 막연한 질문에 “어떻게 써야 할까요?”라고 웃으며 되묻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풀기에는 요가만 한 게 없다”며 적극 권하기도 했다. 그는 “10대 때 사춘기를 심하게 앓았는데, 한 사람의 캄캄한 내면에 불을 켜주는 작품들 덕택에 구원을 받았다”며 “그런 작품들에 비하면 지금 쓰고 있는 건 스스로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친다”고 말했다. 20대 젊은 작가로 살면서 그는 자신이 ‘수련의 과정’에 있다는 생각을 잊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작년 봄 스페인을 여행할 때 마드리드에서 봤던 ‘피카소 특별전’을 회상했다. 슬럼프에 빠져서 떠난 여행이었는데 피카소가 남긴 수없이 많은 드로잉과 시기별로 달라지는 화풍을 보면서 ‘이 대가가 일생을 쏟아 부어 연습하고 수련했구나’ 싶어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사실 지금의 내 모습이 진정한 작가의 모습일까,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이 정말 좋은 작품일까를 생각해보면 ‘기가 찰 때’가 있어요. (웃음) 하지만 마음을 뜨겁게 하는 정말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쓰게 될 그 소설을 저는 ‘북극성’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길로 가야 할까 생각이 많아질 때면 그 빛을 따라가거든요.”

신작 장편소설을 준비 중인 그는 소소한 일상을 주로 다룬 전작들과 달리 사회의 불합리함이나 공동체적 주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는 작품을 쓸 생각이다. 하지만 여전히 “무겁지 않게 쓰려고 노력 중”이다. 그 자신이 ‘끈기 있지 못한 독자’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라고 했다. “주변의 작가들을 보면 대충 쓰는 사람이 없어요. 정말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쓰고 있는데, 독자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걸 보면 안타까워요. 순수문학이 ‘우리끼리의 경계’를 허무는 게 그래서 중요하겠지요.” 그는 “전업작가를 택하는 젊은 작가들이 많고, 경계를 뛰어넘는 시도가 다양해지는 것만 봐도 한국 문학계에서 좋은 작가들이 훨씬 더 많이 나올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작가의 확신에 찬 낙관에 선뜻 동의하고 싶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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