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현대식 ‘헤쳐 모여’-템페스트

  • 입력 2009년 5월 12일 16시 33분


자장면만 먹다 보면 밥이 당긴다. 잘 익은 김치 한 조각을 얹은 흰 쌀밥 한 숟갈만큼 맛있는 음식도 드물다. 온갖 산해진미를 순례하였다 해도, 결국엔 밥 한 그릇 앞으로 돌아와 앉는 게 우리네 입맛이다.

정통이란 것이 그렇다. 별별 것을 섞어놓은 퓨전에 눈길이 가지만 종내는 ‘정통’을 돌아보게 된다. 오래오래 씹을수록 재료 속 깊이 숨은 진짜 맛이 끝없이 우러나오는 음식. ‘정통’이 그렇고, ‘고전’이 또한 그러하다.

고전의 지루함과 난해함은 현대적 해석이란 과도로 깎아내면 그만이다. 빠르고, 감각적인 요즘 청중들의 입맛에 딱이다. 질긴 껍질을 벗기고, 달콤한 속살을 포크로 찍어 내미는 듯한 친절한 고전이 대세이다.

예술의전당 토월정통연극 시리즈의 11번째 작품 ‘템페스트’ 역시 그런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우리나라 대표 연출가 손진책과 극작가 배삼식이 손수 ‘헤쳐 모여’ 시켰다. 가슴을 쿵쿵거리게 만드는 원작의 감동은 그대로, 나머지는 두 사람 맘대로다.

사랑과 배신, 용서라는 인간의 원초적 내면이 판타지와 맞물린 원작은 현대의 무대로 옮겨졌다. 관객들을 템페스트의 마법 세계로 내모는 대신, 요양원에서 살고 있는 노숙자들이 연극 템페스트를 무대에 올리는 과정을 뼈대로 삼았다.

이 참신한 아이디어는 위기와 반전을 거친 뒤, 템페스트의 막이 무사히 오르면서 폭발한다. 주연역을 맡았지만 끝내 무대에 오르지 못한 최씨의 죽음. 노숙자들은 그가 그토록 염원했던 비운의 주인공 프로스페로의 마지막 대사를 읊으며 극에 마침표를 찍는다.

이번 공연의 즐거운 보너스 하나. 템페스트는 CJ문화재단의 ‘we love arts 캠페인’에 선정돼 저렴한 가격으로 관람할 수 있다. 5만원짜리 R석이 3만5천원, 가장 저렴한 A석은 3만원에서 2만1천원으로 살 수 있다.

보다 많은 관객이 관람할 수 있도록 A석을 늘렸고, 화요일 저녁에는 프렌즈석을 마련해 4명이 함께 관람하면 20% 할인혜택을 준다. 목요일 오후 3시 공연은 전석 2만5천원으로, 부지런한 관객이라면 저렴한 값으로 R석에서 관람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 템페스트 출연진

정태화(프로스페로), 장덕주(안토니오), 서이숙(미란다), 최용진(알론조), 송태영(세바스찬), 김현웅(퍼디넌드)

5월20일~6월6일|예술의전당 토월극장|문의 02-580-1300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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