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Black&White]“바둑 둘 일이 있어야 두지!”

  • 입력 2009년 2월 23일 07시 40분


‘제왕의 부활’

이창호가 되살아나고 있다. 1월 한 달간 무려 13전 전승. 2월에는 2승을 보태 15연승을 질주했다. 그 동안 깊은 잠에 빠져들었던 바둑의 신화가 다시금 발진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놀라셨는가. 이것은 정확히 1년 전의 기사이다. 이창호는 기사에서 보듯 두 달 새 16판의 공식대국을 두어 단 한 판을 졌다. 그것도 15연승이었다. 팬들은 다시금 찾아 올 ‘반상의 봄’에 가슴 설레며 환호했다.

그랬던 이창호가 올해 들어서는 딱 5판의 바둑을 뒀다. 지난해에 비해 1/3 수준이다.

최근 조훈현 9단은 바둑을 응용한 온라인게임 ‘바투인비테이셔널’ 선수로 참가했다. 대부분은 조9단의 ‘젊은 변신’에 박수를 보냈지만, 일부에서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조훈현마저 이럴 줄은 몰랐다’며 볼멘소리를 내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기원(이사장 허동수) 이사회에서조차 이사를 맡고 있는 조9단이 바투에 출전한 일을 놓고 분위기가 무거웠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바둑계도 그다지 할 말은 없을 것 같다. 올 들어 조훈현 9단은 아직 바둑돌을 만져보지 못하고 있다. 공식대국이 한 판도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투가 아닌 바둑을 두어라’라고 조훈현 9단에게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둘 일이 있어야 두지!

올해 한국기원은 새로운 기전일정을 전혀 시행하지 못 하고 있다. 1·2월 동안 두어진 대국은 모두 지난해 열린 기전의 연속된 것으로 대부분 결승 대국을 치렀을 뿐이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최대·최고기전인 하이원배 명인전과 전자랜드배 왕중왕전이 침묵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두 기전은 본래 1월에 예선전을 열어 2009년 시즌에 들어가야 한다.

하이원배 명인전은 후원사측이 한국기원의 대회방식에 불만을 갖고 ‘대수술’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원사측에서는 프로기사들만 참가하는 현재의 대회를 아마추어들에게도 오픈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한국기원과의 협의 결과가 대회 개최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전자랜드배는 프로기사 윤기현 9단과 인연이 깊다. 기전 창설에 윤9단이 깊이 관여했고, 현재 바둑TV 해설과 신문 관전기를 윤9단이 도맡고 있다. 문제는 억대 바둑판 소송 건으로 윤9단의 이미지가 최악으로 추락한 데다, 팬들이 연일 윤9단에 대한 성토를 퍼부으면서 전자랜드배 역시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랜드측에서는 이런 시각에 대해 ‘오해’라며 분명히 선을 그었다. 기전이 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경기 탓으로 개최시기를 고민 중에 있다는 것. 홍봉철 회장이 워낙 바둑 애호가인 만큼 올 하반기쯤 대회가 열리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내놓았다.

한국기원 자료에 따르면 235명 프로기사 중 무려 70%에 달하는 170여 명의 프로기사들이 올해 단 한 판도 대국을 하지 못 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섯 판 이상 바둑을 둔 기사는 5명에 불과했다. 23일에 개막하는 비씨카드배 월드바둑챔피언십에는 한국기원 사무국이 놀랄 정도로 많은 기사들이 출전의사를 밝혀 왔다. 프로기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오직 ‘바둑’이며, 이들이 얼마나 바둑에 목말라 하고 있는지를 한 눈에 드러내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기원은 만사를 제쳐놓고 이들의 ‘타는 목마름’부터 풀어주고 볼 일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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