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을 꿈꾸지 않은 청춘이 있으랴

  • 입력 2009년 2월 23일 02시 54분


문인 29명 테마산문집

“기차는 곧 춘천행 기차였다. 경춘선을 탄다는 것은 일상으로부터, 학교로부터, 나 자신으로부터 탈출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경춘선은 늘 ‘사건’이었다. 지금도 청량리역 앞을 지날 때면, 맥박 수가 달라진다.”(이문재 시인)

청춘의 설렘과 아득한 그리움을 싣고 달리는 경춘선 열차, 안개 자욱한 호수들로 유명한 도시 춘천…. 소설가 오정희, 전상국, 최수철 씨, 시인 오세영, 유안진, 신달자 씨, 문학평론가 최동호 씨 등 29명의 문인이 춘천을 테마로 한 산문을 모은 ‘춘천, 마음으로 찍은 풍경’(문학동네)을 펴냈다. 춘천에서 태어났거나 살고 있는 작가들은 이 책에서 유년의 기억과 현재가 살아 숨쉬는 골목골목까지 독자들을 안내하고, 한때 춘천을 스쳤던 작가들은 젊은 시절의 낭만을 추억하거나 문학적 감수성의 영향, 잊지 못할 인연을 털어놓는다.

특히 경춘선이 주는 충동과 두근거림은 곳곳에서 엿보인다. 그곳에는 젊음과 꿈, 그 시절 수줍고 애틋한 연정이 있다. 전라도 시골 태생인 오세영 시인이 처음 춘천에 갔던 것은 대학 시절 어느 겨울이었다. 여자친구와 영화관에서 나오는데 하늘에서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고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 그가 불쑥 말을 꺼냈다. “우리 춘천 가자!” 하지만 춘천에 도착하기도 전에 눈발은 그쳤고 야간통행금지 시간에 맞춰 귀갓길을 서두르느라 그날의 일탈은 허망한 에피소드로 끝나버렸다. 문학평론가 최동호 고려대 교수에게도 춘천은 ‘열차를 가득 메운 청년 남녀 학생들의 노랫소리와 강촌’ 등 대학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거나 춘천에서 이어진 인연 덕택에 만난 아내 등 소중한 기억이 엮인 곳이다.

호수와 안개도 빠질 수 없다. 소설가 한수산 씨는 방황하던 문청 시절의 허기와 갈증을 도시를 채우고 있던 안개의 이미지로 되짚는다. “의암댐, 춘천댐, 소양댐이 속속 강을 막으면서 이루어진 호수에서 피어오른 안개는 도시를 뒤덮기 시작했다…밤안개 속을 걷는 우리들의 안에서 꿈이나 이성은 연체동물이 되어 흐늘거렸고, 눈멀게 했고, 막막한 사랑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춘천의 낭만은 문인들의 문학적 감성을 자극한다. 춘천(春川)이란 도시의 이름과 이미지에 매료된 유안진 시인은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춘천을 일상의 공간이자 문학적 터전으로 이룬 이들도 있다. 소설가 오정희 씨는 춘천 출신의 남편과 함께 30여 년의 세월을 보내며 ‘옛 우물’ ‘새’ 등 춘천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잇달아 집필한다. 춘천으로의 진입 방법에서부터 춘천호, 소양호, 청평사 등 춘천의 명소들, 소양강변의 산책과 닭갈비, 송어회, 메밀촌떡 등 별미까지 눈을 감고도 읊을 수 있는 춘천 태생의 소설가 최수철 씨는 “춘천의 진실된 모습…그것은 오직 소설로만 가능할 터”라고 말한다. 춘천 곳곳의 정경을 담은 박진호 사진작가의 작품들이 함께 수록됐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