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매일 된장찌개 사먹는 노인

  • 입력 2009년 2월 21일 03시 21분


‘겨울로 가는 노인’ 장용길, 그림 제공 포털아트
‘겨울로 가는 노인’ 장용길, 그림 제공 포털아트
노인은 날마다 재래시장 어귀에 있는 돼지갈비 연탄구이집을 찾아갑니다. 저녁 6시경 아직 손님이 붐비지 않을 때 구석 자리에 앉아 혼자 된장찌개를 먹습니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 홀로 식사를 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쓸쓸하고 초라해 보이지만 노인은 주변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개를 들지 않고 식사를 합니다.

노인이 식당을 처음 찾아온 것은 지난 초겨울 어느 날 해질 무렵이었습니다. 돼지갈비를 주로 파는 집을 찾아와 노인은 된장찌개를 먹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40대의 주인 여자는 연전에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생각이 나 장삿속과는 거리가 먼 대답을 하고 말았습니다. 메뉴에는 된장찌개가 없지만 고기를 먹고 난 손님이 식사를 할 때 내는 게 있다고 하자 그거면 된다고 노인은 굳이 부탁을 하였습니다.

식사가 끝난 뒤 주인 여자는 노인에게 식사비를 받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식당 메뉴에 있는 변변한 된장찌개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서였는데 노인은 3000원을 내밀며 연탄 2장을 달라고 했습니다. 연탄을 건네주자 노인은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는 재래시장 뒤쪽의 산동네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습니다. 그날 이후 노인은 날마다 저녁 6시경 식당으로 내려와 된장찌개를 먹고 연탄 2장을 손에 들고 산동네로 올라갔습니다. 하루 한 끼의 식사만 하고 두 장의 연탄으로 난방을 해결하는 노인이 안쓰러웠지만 내색을 하는 게 외려 노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것 같아 주인 여자는 다만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식사를 끝낸 노인이 주인 여자에게 작은 메모지 한 장을 건넸습니다. 거기에는 남자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를 확인하고 주인 여자가 고개를 들자 몹시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던 노인이 힘겹게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식당으로 사흘 이상 밥을 먹으러 내려오지 않거든 그곳으로 전화를 걸어주시오.”

노인은 오늘도 고개를 숙이고 된장찌개를 먹습니다. 식사가 끝난 뒤 3000원을 내고 연탄 2장을 받아 양손에 들고 산동네로 올라갑니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길을 걸어 올라가는 노인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주인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오늘처럼 내일도 무사히 다녀가시길 비는 마음에 연민이 가득합니다.

사흘 이상 식당으로 내려오지 않는 건 노인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노인이 두려워하는 건 죽음이 아니라 방치당하는 주검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기별을 부탁한 것일 터이니 주인 여자의 마음이 편할 리 없습니다. 하루 한 끼 식사와 2장의 연탄으로 연명하는 여생, 젊은 시절에는 보살피고 거느린 사람도 많았을 터인데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요…. 누추하고 남루한 여생을 어루만지듯 펑펑 함박눈이 내리는 밤입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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