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님은) 이제 혜화동 할아버지가 아니라 한국의 할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연세가 많아지신 다음에는 도저히 (세상에 진) 빚을 갚을 길이 없음을 알고 ‘요 모양 요 꼴’이라고 탄식하며 자신에게 ‘바보야’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분명 이렇게 말하실 것입니다. ‘어서 오너라. 내 사랑하는 바보야. 그만하면 다 이뤘다’고.”
20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 장례미사에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강우일 주교(64·사진)가 주교단을 대표해 고별사를 낭독하자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하는 참석자가 적지 않았다.
강 주교의 고별사 한마디 한마디에는 추기경을 곁에서 줄곧 지켜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수십 년에 걸친 세월의 정(情)이 묻어났다.
그는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이던 1977년 보좌신부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교구 교육국장과 홍보국장, 보좌주교를 지내며 추기경의 속내를 가장 잘 아는 인물로 꼽혔다. 추기경이 양아들처럼 그를 아꼈다는 후문이다.
그가 추기경이 2년여 동안 입원과 퇴원을 되풀이해야 했던 기억을 떠올리자 미사장에는 “정말 그렇게까지야…”라는 놀라움과 슬픔이 교차했다.
“언제부턴가 소화도 안 되시고 배설도 당신 뜻대로 안 되시니 인간의 기본적 신체 기능이 거의 마비되어 가셨습니다. 계속되는 육신의 한계 상황을 온몸으로 겪어 내시며 정신적으로도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홀로 힘겹게 싸우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싸움은 저희가 아무것도 도와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주교의 입에서는 나오기 힘든 표현까지 쓰며, 김 추기경에게 더는 힘이 되지 못했던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우리 추기경님, 무슨 보속(補贖·지은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할 것이 그리도 많아서 이렇게 길게 고난을 맛보게 하십니까? 추기경 정도 되는 분을 이 정도로 ‘족치신다면’ 나중에 저희 같은 범인은 얼마나 호되게 다루시려는 것입니까? 겁나고 무섭습니다.”
그러면서 몇 주일 전에는 “‘주님, 이제 그만하면 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 추기경님 좀 편히 쉬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