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추기경 5.18당시 비화

  • 입력 2009년 2월 18일 18시 59분


김수환 추기경이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들과 부상자들을 걱정하는 편지와 함께 긴급구호자금을 보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18일 윤공희 대주교(86·전 천주교 광주대교구장)에 따르면 김 추기경은 계엄군이 시민군에 밀려 광주 도심 외곽으로 후퇴하고 봉쇄작전을 펼치던 1980년 5월 23일 윤 대주교에게 서신을 보냈다.

교통수단이 끊긴데다 서슬 퍼런 계엄령 하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고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김 추기경의 편지는 군종신부들의 도움을 받아 은밀하게 광주까지 전달됐다.

김 추기경은 당시 광주에서 계엄군과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진압작전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손수 편지를 쓴 것으로 전해졌다. 김 추기경은 한 쪽 짜리 편지를 통해 "광주에서 많은 사람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이 크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평화적으로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윤 대주교는 "다급하게 쓴 듯한 짧은 편지 속에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액수인 100만 원 짜리 수표가 함께 들어있었다"며 "노심초사 광주 시민들의 안전을 염려하는 추기경의 심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윤 대주교는 "시민군과 계엄군의 주요 대치장소였던 광주 서구 화정동 국군통합병원 근처에서 뜻밖에도 상무대 군종신부를 통해 추기경님의 편지를 건네받고 사제들이 큰 힘을 얻었다"고 전했다.

동봉된 100만 원은 곧바로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 맡겨져 부상자 치료와 구속자 영치금 등 일종의 긴급구호자금으로 쓰였다.

김 추기경은 이후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1984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지를 선정할 때 광주를 가장 먼저 고려했다. 첫 공식일정을 광주에서 시작한 교황은 미사가 예정됐던 북구 임동 무등경기장으로 곧바로 가지 않고, 시민들이 계엄군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장소인 금남로와 전남도청 앞 광장을 차로 한 바퀴 돌며 시민들에게 화답했다.

김 추기경은 후일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광주의 5월"이라며 고통스러운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윤공희 대주교는 "추기경께서는 광주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당시 교황청 대사를 통해 주한 미국대사 등을 만나 문제를 풀어보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광주=김권기자 goqu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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