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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2월 5일 02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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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51년 6·25전쟁 통. 엄동설한 광목천의 배낭 하나를 달랑 메고 일가족이 피란길에 오른다. 국도를 꽉 메운 피란 인파, 고갯길을 넘을 때 내리던 함박눈, 스물댓 명이 한 방에 움츠리고 잠을 청했던 포성 울리던 밤….
한국평단의 원로이자 예술원 회원인 문학평론가 유종호(74·사진) 씨의 회상에세이 ‘그 겨울 그리고 가을’(현대문학)은 이런 풍경으로 시작된다. 2004년 ‘나의 해방 전후’로 1940∼49년 광복 전후 겪었던 체험을 풀어낸 바 있는 저자의 두 번째 회고록이다.
피란길에 오른 일가족이 충북 청주에 오게 되면서 저자는 해병대 노동사무소에서 일하게 된다. 청소, 잔심부름에 서기로 일하며 돈을 버는 것이 부역교원으로 정직처분을 받은 아버지를 대신해 집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때부터 청주, 강원 원주 등지에서 미군부대 노무자로 일하게 된 열일곱 살 소년의 체험은 개인(가족)사, 시대적 아픔과 얽히며 소설처럼 생생하고 흡인력 있게 재현된다.
다짜고짜 사무실로 찾아가 “헬로, 아이 원트 투 워크”라고 말했던 그를 채용해주고 순탄치만은 않았던 군부대 생활의 버팀목이 돼 줬던 파슨 준위, 윗사람들에겐 싹싹하고 부지런했지만 ‘유일한 아랫것’인 유 씨 앞에선 자동으로 목에 힘이 들어가곤 했던 미스터 남 등 개성 넘치는 인물들은 흥미롭다. 유 씨는 “그 시절은 괴로운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인물들을 하나씩 불러내 형상화하는 글쓰기 과정은 무척 즐거웠다”고 말했다.
고달프고 삭막했던 피란 시절이었지만 그 당시 읽었던 시집은 막연하나마 그에게 문학적 원체험으로 남아 있다.
주급을 탄 뒤 몇 번을 망설이다 지물전에서 산 시집은 ‘기댈 언덕조차 없는 황야에서 맛본 오랜만의 문화접촉’이었다. 아직 수중에 보관 중인 그 시집에는 훗날의 문학평론가가 “시가 시를 낳고 소설이 소설을 낳는다”고 써 둔 낙서가 남아 있다.
그의 회고는 아버지의 복직과 함께 피란 생활을 접고 충주의 학교로 다시 돌아오면서 끝을 맺는다.
유 씨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어느 건물 입구에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마련이다’는 말이 써 있다. 개인사든, 사회사든 마찬가지다”라며 “요즘 젊은 세대들은 근접하고 가까운 과거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데 이런 책을 계기로 호기심을 가지고 알아 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