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긍정적 생각이 삶의 원천…‘한국인 피’ 자랑스러워”

  • 입력 2009년 1월 22일 02시 55분


英로열발레단 ‘라 바야데르’ 주역맡은 재일교포 출신 최유희 씨

《“제가 꿈꾸던 삶을 살다니 저는 정말 행운아라고 생각해요.” 28일 오후 7시 반(현지 시간) 영국 런던 코벤트가든 극장에서 로열발레단의 ‘라 바야데르’의 니키야 역으로 주역 데뷔하는(본보 1월 14일자 A24면 참조) 재일교포 출신 발레리나 최유희(24) 씨. 19일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백열등처럼 환하게 빛났다. 로열발레단 홈페이지에는 그의 바쁜 하루를 담은 ‘어 데이 인 더 라이프 오브 어 발레리나’라는 동영상이 올라있다. 그는 오전 10시부터 하루 12시간씩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인터뷰는 그 ‘짧고 늦은’ 점심시간을 할애해 이뤄졌다.》

○ 인도왕국무대 3각관계 담은 대형작품

최 씨는 2004년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프로리나 공주 역에 깜짝 발탁됐고 지난해 말에는 ‘호두까기인형’ 낮 공연에서 ‘사탕공주’ 역으로 주연급 역할을 소화했다. 그러나 그의 표현처럼 니키야 역과 같은 ‘빅 롤(big role)’은 처음이다.

라 바야데르는 인도의 한 왕국을 무대로 무희인 니키야와 전사인 솔로르 그리고 공주 감자티의 3각 관계를 담은 초대형 발레공연. 출연하는 무용수가 130명이 넘고 한 무대에 32명의 군무가 펼쳐져 ‘블록버스터 발레’로 불린다.

“니키야 역은 제게 너무도 특별합니다. 극 전체를 끌고 가는, 배역의 비중이 가장 크고 의상도 너무 아름답지만 무엇보다도 매우 영적(靈的)인 역할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훌륭한 발레리나가 되는 것만큼이나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게 제 인생의 목표니까요.”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다섯 살에 발레에 입문하고 14세에 프랑스 파리로 발레 유학을 떠난 뒤 10년간 유럽에서 생활한 그는 한국말이 서투르다.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했지만 한국 팬에 대한 인사말로서 ‘감사합니다’와 할아버지의 고향인 ‘경상남도’는 또박또박 발음했다. 불고기를 특히 좋아한다는 그는 자신의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게 매우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여권상으로는 그는 엄연한 한국인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일본에서 교육을 받고 프랑스에서 발레를 배우고 영국에서 발레리나로 산다는 게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4개국의 문화적 세례를 받은 셈이니까요.”

인터뷰 중 그의 입에선 ‘꿈을 삶으로(live your dream)’ 또는 ‘삶을 즐기라(enjoy your life)’는 말이 주문처럼 끊임없이 샘솟았다.

그런 그의 긍정적인 삶의 자세가 영국 발레계를 매료시켰을까. 영국 가디언지의 주말판인 옵서버지가 올해 영국 무용계에서 가장 주목할 인물로 그를 꼽았다. 로열발레의 주역 발레리나 로런 커트버트슨은 그를 “가장 순수한 의미의 기쁨을 발산한다”고 표현했다.

○ 日 후쿠오카 태생…“감사합니다” 또박또박

2월 초 한 번 더 니키야 역을 맡은 뒤 5월 쇼팽의 피아노곡에 맞춘 발레작품 ‘레 실피드’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는 그는 다양한 배역을 연습 중이라 또 어떤 작품에 발탁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의 롤 모델은 1980, 90년대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에투알(최고주역무용수)로 활약한 엘리자베트 플라텔이다.

현재에 충실하겠다는 그는 “무대 위에서 철저히 니키야가 되면서도 동시에 제 자신이 되기(be myself)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최유희 씨는…

2000년에 세계 5대 무용콩쿠르의 하나인 파리콩쿠르에서 2위에 오르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2년 뒤 17세의 나이로 스위스 로잔 국제무용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고 2003년 로열발레단에 입단했다. 로열발레단은 아티스트-퍼스트 아티스트-솔로이스트-퍼스트 솔로이스트-프린시펄(주역 무용수와 조연 전문 캐릭터 프린시펄)로 구성된다. 2004년 퍼스트 아티스트로 승급한 최 씨는 지난해 7월 솔로이스트를 건너뛰고 퍼스트 솔로이스트로 2단계 승급했다. 9명의 퍼스트 솔로이스트 중 발레리나는 최 씨를 포함해 3명뿐이다. 영국 로열발레단은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와 함께 세계 3대 발레단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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